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이 15일부터 숙소에서 이탈해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계는 시범사업이 잘못 설계됐다는 방증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 인증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인 홈스토리생활(대리주부) 소속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은 추석 연휴였던 15일 숙소에서 나간 뒤 이날까지 숙소로 복귀하지 않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탈한) 가사관리사 2명 중 1명은 필리핀 현지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비전문취업(E9) 외국인노동자가 영업일 기준 5일 이상 무단결근하는 등 소재 파악이 안 되면 사업주는 지방노동청과 법무부에 ‘이탈(고용변동) 신고’를 해야 한다. 25일까지 이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26일 신고가 이뤄지게 돼 있다. 신고 뒤에는 1개월 이내 강제 출국 명령이 내려지고, 강제 출국에 불응하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환된다.
이들이 이탈한 배경으로는 내국인 대비 적은 임금과 고용의 불확실성 등 노동 조건이 꼽힌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지난달 6일 입국해 이달 2일까지 교육을 받았고, 3일부터 일을 시작했다. 교육수당 명목으로 지난달 20일, 이달 20일 두 차례 임금을 받았는데 첫 달은 96만원, 이달은 106만원으로 모두 100만원 안팎이었다. 그마저도 세금과 4대 보험료, 숙소비를 빼면 실수령액은 50만원 정도다. 다음 달 20일 지급되는 월급은 세전 기준 189만원, 이후에는 200만원 초반대다.
국내에선 가사도우미 서비스 비용이 비싸다는 여론도 있지만, 한국에 온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은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같은 E9 비자로 들어온 근로자여도 제조업에 근무하게 되면 월급이 비교적 많으니까 시범사업 근로자들이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7개월의 시범사업 종료 뒤 가사관리사들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을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도 이들의 불안감을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부여받은 비자는 8개월짜리다. 이 관계자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규모를 확대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긴 하지만, 근로자들이 ‘8개월 뒤에도 머무를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확답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시범사업 전부터 예고됐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숙소 비용도 부담해야 하는 등 저임금을 비롯한 열악한 노동 조건이 핵심 문제”라며 “추가 이탈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 이탈은 본인이 해야 하는 일에 비해 낮은 보수를 받는다고 느낄 때 일어나는 일”이라며 “노동 조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논평을 내고 “가사관리사가 숙소를 이탈한 이유는 임금과 노동 조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해당사자와 협의 없이 밀실에서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한 정부가 자초한 일이며, 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고용부와 협의해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급여 지급 방식을 기존 월급제에서 주급제로 변경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24일 열리는 가사관리사 대상 간담회에서 시범사업 시행에 따른 애로사항 등 현장 의견을 반영해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