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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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안전 위해 물질 등 우리 국민 위협 땐 강력 대응

軍, 北 오물풍선에 경고장

北 풍선 살포 일상화에 재산피해 커져
국민 불편·불안 고려한 고강도 메시지
원점 타격 등 물리적 충돌 가능성 작아

북한의 쓰레기 풍선에 대해 그동안 차분한 기조를 유지해 왔던 군 당국이 23일 “선을 넘으면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고강도의 메시지를 낸 것은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게 하는 경고의 의미로 풀이된다. 또 국민의 불안을 고려한 것으로도 보인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계속되는 쓰레기 풍선 도발에 국민 불편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들을 종합해서 정리한 메시지라고 밝혔다.

출근길에 떨어지는 오물풍선 23일 오전 출근길에 북한이 전날 날려보낸 오물풍선이 낙하하는 장면이 한 시민의 사진에 포착됐다.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풍선 살포가) 지금은 선을 안 넘은 것이냐’는 질문에 “저희가 군사적인 조치를 추가로 할 만한 사안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실장은 “명확한 선은 지금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 현재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이 장기화하고 있고, 또 국민에게 불편과 불안감을 주고 있어서 군의 입장을 정리해서 메시지로 드렸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아직 선을 넘지는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북한의 쓰레기 풍선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메시지를 낸 배경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과 상관없이 바람만 맞으면 풍선을 날리고 있고 이로 인한 재산피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서울 강서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시민이 하늘에서 떨어진 쓰레기 더미에 오른팔을 맞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현재까진 선을 넘었다고 보기엔 애매한 상황이다. 이 실장은 “최근 하이브리드전이나 회색지대 도발의 경우에 어떤 주체를 확인하거나 그 피해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군 당국이 언급한 ‘군사적 조치’가 원점 타격 등과 같은 극단적인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레이저 저격 등 대응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합참은 이날 기존 수거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재확인했다. 북한이 현재로써는 회색지대 전술 수준의 도발을 이어오고 있는 데다 우리 쪽에서 대응 수위를 지나치게 끌어올리게 되면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국민의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면 대응방식에 대한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군 관계자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현재는 북한이 선을 넘게 되는 조건으로 풍선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거나 풍선에 안전에 위해가 되는 물질을 넣는 등 우리 국민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났을 때”라며 “발열 타이머로 인한 단순 화재에 대응하진 않겠지만, 목적성을 가지거나 의도를 보였을 때 우리도 대응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불편을 주려는 것이 아닌 국민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군사적인 조치에는 대북확성기 방송을 확대 실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군의 이번 발표는 쓰레기 풍선으로 여론이 악화되고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을 감안한 메시지로 읽혀진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으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면 정부나 군 당국의 대응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도 거세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북한의 의도했던 목표이기도 하다.

 

앞서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6월 담화에서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아직 북한의 새로운 대응이 무엇인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우리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에 대응해 풍선을 날리던 행태에서 남측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쓰레기 풍선을 일상화하는 방향으로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현재 한국 정부의 자세가 공세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과거처럼 우리가 대북전단을 날리면 그때그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도발의 일상화 전략으로 선회한 것 같다”며 “대북정보접근권을 확대하겠다고 한 것은 북한 내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더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