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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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 AI 법규 없고 인재 부족한데 3대 강국 가능한가

경쟁력 세계 6위지만 격차 더 커져
규제 등 운용환경·인재분야 뒷걸음
AI 기본법 제정·규제 혁파 속도 내야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영국 데이터 분석기관 토터스 인텔리전스의 ‘2024 글로벌 AI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순위는 86개국 중 6위로 전년과 같았다. 6위라지만 점수가 100점 만점(1위 미국)에 27점으로 1년 전(40.3점)보다 뚝 떨어졌다. 경쟁력 격차가 더 벌어졌다. 분야별로는 AI 규제 등 운용환경이 11위에서 35위로 추락했고 인재도 13위로 한 계단 뒷걸음질 쳤다. 이래서는 윤석열정부가 공언한 2027년 ‘AI 3대 강국’은 공염불에 그칠 우려가 크다.

가장 큰 걱정은 경쟁력 근간인 고급인재의 유출이다. 한국의 AI 고급인재는 2500여명으로 전 세계의 0.5% 정도인데 이마저 해외로 떠나니 미래가 암담하다. 미국 시카고대 폴슨 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AI 인재의 40%가 해외로 나간다. 해외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재 대우가 한국의 4∼5배에 이른다니 떠난 인재를 탓할 게 못 된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AI 인재 75%가 몰려 있는데도 인재 유치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인재 한 명 유치를 위해 스타트업을 통째로 사는 일까지 벌어진다. 중국도 미국에서 자국 출신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연봉의 절반을 지원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 정치권은 강 건너 불구경한다. AI 산업 육성과 안전성 확보 등의 근거가 되는 ‘AI 기본법’조차 없다. 21대 국회에서 방치되다 자동폐기됐고 22대 국회도 정쟁과 파행을 거듭하며 별다른 진척이 없다. 그사이 유럽연합(EU)은 AI의 위험 수준에 따른 차등규제를 담은 ‘AI 법’을 통과시켰고 미국, 일본 등 경쟁국들도 법 제정과 규제 혁파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는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판가름하는 핵심기술이다. AI 경쟁에서 낙오하면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까지 세계 변방으로 밀려난다. 주요국이 AI 전쟁에 총력전을 벌이는 까닭이다. 기업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국회는 AI 기본법을 서둘러 제정하고 이공계 지원 등 활성화 및 규제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AI 관련 법규가 없어 기업이 투자를 못 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는 AI 국가전략과 정책 전반을 가다듬고 연구개발 지원, 인프라 확충 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인재 확보는 발등의 불이다. 낡은 보상과 고용체계를 확 뜯어고쳐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인재 유치 기업 등에 세제 혜택을 늘려 인건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