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하니 진짜 한국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전남 해남에 소재한 선박 도장업체 산동산업에 채용된 베트남 유학생 응웬티응옥아잉(26)씨는 20일 한국에 장기간 정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시울을 붉혔다. 아잉씨는 한국에 유학온 지 6년 만에 번듯한 일자리를 잡았다. 2018년 광주여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아잉씨는 올해 석사 과정을 마치는 재원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떨어진 후텅에서 태어난 아잉씨는 고교를 마친 후 ‘코리안 드림’을 안고 광주로 유학왔다.
아잉씨는 이제 그 코리안 드림을 이루는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그는 유학생의 최대 난제였던 비자 연장 걱정 없이 최대 5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유학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어엿한 직장인으로 신분이 달라진 것이다. 아잉씨는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먼저 드리고 싶다”며 “취업을 계기로 영주권도 얻고 한국에 정착하는 꿈을 꼭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대학, 교육부, 중소벤처기업부와 손잡고 지역 대학의 유학생들을 지역 기업에 취업을 알선하고 장기간 살게 하는 ‘유학생 정주화(定住化·일정 지역에 자리를 잡고 삶)’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구 감소로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들이 외국인 유학생을 지역 인재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주화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의 지역 정주화의 핵심은 취업이다. 졸업 후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유학생이 굳이 지역에 남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외국인 유학생의 지역 정주를 위해 가장 관심을 갖는 정책은 지역특화형 비자(F-2-R·지역우수인재 전형)다. 지역특화형 비자는 인구 감소지역에서 일정 기준을 충족한 외국인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비자를 말한다. 법무부는 인구 감소지역이나 기업에 일정기간 취업하거나 거주하는 조건으로 유학, 구직, 비전문취업 비자 등을 지역특화비자로 전환해 선발급해주고 있다.
지자체는 유학을 마친 졸업생들이 F-2-R 비자로 취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북도는 유학생들의 지역 안착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유학생들이 인구 감소지역인 10개 시·군에 취업하고 5년 이상 정착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F-2-R 비자 발급이라는 유인책을 내놓았다. 기업체도 유학생 취업 시 기숙사 제공과 연봉 4000만원, 명절 휴가비 등을 제시한다.
경남도는 2028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1만명 유치를 목표로 지역 정주 중심의 유학생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경남지역 외국인 유학생 수는 2874명으로 전국 유학생(18만1842명)의 1.6%로 미미한 수준이다. 인구 소멸위기에 처한 경남도는 이들 유학생을 지역 기업에 취업하도록 유학정책을 바꾸고 있다.
경북도는 올 4월 지자체 최초로 유입부터 사회통합까지 책임지는 ‘경북도 이민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경북을 아시아의 이주 허브로 만들겠다는 마스터플랜을 밝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해 11월 베트남에 이어 올 4월 몽골, 이번달 키르키스스탄 살롬베콥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 설명회를 가졌다.
부산시도 올 4월 외국인 유학생 유치부터 교육과 취업은 물론 정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기업 수요 기반의 맞춤형 현장실습제를 도입해 지역 대학을 나온 외국인 유학생이 지역 주력 산업인 조선기자재 업체 등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박람회도 연 2차례 개최한다.
광주시는 지난해 5월 외국인 유학생들의 상호 소통, 유학 생활 격려를 위한 제1회 광주 외국인 유학생의 날을 개최했다. 또 지난해 지역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광주 외국인 유학생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지역 정주를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충북도는 올해부터 ‘충북형 K유학생 제도’를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유학생 1만명 유치를 목표로 유치전을 펴고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지역 전략산업 핵심 기술인력 분야의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유학생들이 학업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제조업 시간제 취업 조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강원도는 박사급 외국인 유학생의 안정적인 정주를 위해 체류기간을 늘려주는 출입국관리법의 특례를 추진하고 있다. 특례가 이뤄지면 각종 특구나 산단에서 일하는 석·박사급 외국인은 정기적으로 비자를 연장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생명공학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의 연구인력 확보와 지역 소멸 방지에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고교도 유학생 유치… 학·관·산 손잡아야
외국인 유학생 유치 대상은 고등학교로 확대되고 있다. 강원도교육청은 베트남 고교생 4명을 외국인 전형으로 한국에너지마이스터고로 유치했다. 이들 4명은 내년 3월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학생들과 동일한 수업을 받는다. 외국 출신 고교생 유치는 3년간 시범 운영된다. 강원도교육청이 이처럼 고교생 유치에 나선 데는 심각한 학령인구 감소 때문이다.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은 “베트남 고교생 유학생 유치는 인구유입과 지역기업 취업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역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심각하다.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에서 산업용 밸브 제조업을 하는 ㈜엠티에스는 3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채용하기 위해 이달 11일 목포대에서 열린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에 참여했다. 엠티에스는 최근 2년간 직원을 충원하지 못해 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이진석 엠티에스 상무는 “3D업종이라 그런지 직원들이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며 “얼마 전 인도인 1명을 채용했는데, 일을 잘해 외국인 유학생 쪽으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지역 기업이 갈수록 산업인력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지역 대학에 유학 중인 유학생을 지역 노동자원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에서 지역 기업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데려오기는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며 “한국어를 할 수 있고 지역 대학을 다녀 지역을 잘 아는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 활용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외국인 유학생의 졸업 후 국내 취업은 미미한 수준이다. 전북대 윤명숙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의 대학 졸업 후 진로는 2022년 기준 본국 귀국 29%, 국내 진학 11%, 국내 취업 8%이다. 외국인 고급인력의 정착 유인이 크지 않아 실제 국내 취업·정주로 이어지는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유학생 정주화 1차 걸림돌은 비자 연장
지방대학에 유학 온 외국인을 지역 업체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정주 여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유학생 광역비자가 지역 정주에 어떤 효과를 낼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광역비자는 지방대학 유학생의 부모 2명에게 취업비자를 주는 제도다. 관련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업체에 필요한 산업인력과 이공계 유학생 유치는 물론 안정적인 정착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자체와 기업, 대학이 손을 잡고 유학생의 정주 여건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학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고, 지자체는 대학과 기업이 원하는 방향의 행정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대성 전주대 교수는 “유학생들이 지역 업체에서 많은 인턴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유학생의 진료교육과 취업지원에 중심을 두는 조직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이 취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자 연장이다. 구직 과정에서 비자를 유지하고 취업비자로 전환이 까다롭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유학생들은 졸업 후 일정기간 취업을 위해 합법적으로 체류 가능하도록 취업비자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외국은 졸업 후 유학생이 취업할 수 있는 일정 기간 체류 기간을 연장해 주는 비자를 활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졸업 후 3년간 정당한 체류 기간을 허용해 일 경력을 쌓고 인턴십을 할 수 있는 취업비자(PGWP)를 운용하고 있다. 유학생의 배우자도 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어 안정적인 체류가 가능하다.
호주는 졸업한 유학생이 경력을 쌓고 취업 기회는 물론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간을 확보하도록 임시정주비자를 내주고 있다. 이런 비자를 받은 외국인 유학생들은 인구밀도 수준이 낮은 지자체에서 12개월간 거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