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가 러시아 심사위원 악수 거부한 이유

202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우승자 드미트로 우도비첸코 첫 내한 연주회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콩쿠르 우승 당시 러시아 거장 심사위원 바딤 레핀 악수 거부 논란
“레핀이 러시아인어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 죽이는 전쟁 일으킨 러시아 정부 지원 받았기 때문”
“짧은 순간이나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행복을 드리는 게 나의 역할…콩쿠르 우승 소식 전하게 돼 기뻐”

세계 3대 음악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올해 바이올린 부문 우승자는 우크라이나 출신 드미트로 우도비첸코(25)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와중에 그가 지난 6월 결선 무대에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하고 우승하자 이목이 쏠렸다. 특히 우도비첸코가 시상식 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인 러시아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 악수하는 것을 거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첫 내한 연주회를 앞두고 23일 서울 강남구 레베누보 빌딩 쇼팽홀에서 만난 우도비첸코는 “요즘은 말에 아무런 힘이 없고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레핀을 매우 존경하지만 당시 ‘(그의 이력 탓에) 악수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드미트로 우도비첸코가 지난 6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모습. SBU 제공

그러면서 레핀이 단순히 러시아인이고,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세계적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남편이어서 악수를 거부한 게 아니라고 했다. “주변에 많은 러시아 국적 연주자와 친하게 지내고 레핀에게도 개인적 감정은 없습니다. 다만 레핀은 러시아 정부가 지원하는 트랜스 시베리아 아트 페스티벌 음악감독이고 전쟁 기간에 러시아 정부가 주는 상도 몇 차례 받았어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예요. 레핀처럼 러시아 정부가 조직한 일에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우도비첸코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이 자신에게 더욱 의미있었던 이유로도 “짧은 순간이나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행복을 드리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행히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리 부모님은 무사하시지만 매일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한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지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비올리스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연스레 음악을 접한 그는 5살 즈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2016년 독일 에센 폴크방 대학으로 와 러시아 출신의 보리스 가를리츠키를 사사했다. 2022년부터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에게 배우고 있다. “이 시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테츨라프 선생님에게 몇 안 되는 제자로 가르침을 받게 돼 영광이에요. 음악을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법, 연주 기법 등 하나하나 즐겁게 배우고 있습니다. 다만 선생님이 연주회가 많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요. 짧은 시간이지만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로 우도비첸코. SBU 제공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3위, 지난해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에 이어 마침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까지 거머쥔 우도비첸코는 “지금까진 콩쿠르 준비하고 참가하느라 긴장 속에 살았는데 앞으로는 콩쿠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개인적으로 쇼스타코비치 음악 자체를 좋아하고, 음악은 정치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은 제가 지금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을 가장 가깝게 묘사해주는 음악이라 선곡했어요.”

 

그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준우승자인 동갑내기 조슈아 브라운(미국)과 함께 24일 울진을 시작으로 25일 경주, 27일 당진, 29일 제주 서귀포에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자 콘서트’를 이어간다. 26일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다비트 라일란트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준다. 11월에도 다시 찾아 고양 아람누리에서 개최되는 제2회 DMZ(디엠지·비무장지대) 국제음악제에 참석한다. 평화를 염원하는 디엠지 음악제에 걸맞는 연주자로 낙점된 우도비첸코는 11월 13일 피아니스트 윤홍천과 함께하고, 16일 폐막공연에서 DMZ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브루흐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