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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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레바논 폭격 사망자 600명 육박… 전면전 초읽기

어린이 등 사상자 2000명 넘어서
이 “다음 단계 준비”… 美 저지 총력
헤즈볼라도 로켓 발사 반격 나서

레바논 하루 인명피해 34년 만에 최다
공습 피해 수만명 피신… 난민 11만 달해
이, 헤즈볼라·하마스 분리작전 돌입 분석

美, 중동 지역에 소규모 병력 파견 계획
“빨리 떠나라” 자국민 탈출 재차 촉구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2006년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하면서 양측이 사실상 전면전 수순에 돌입했다. 이스라엘군이 곧 국경을 넘어 레바논 영토로 지상군을 투입할 시점도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전역에 있는 “로켓 발사대, 군사지휘소, 테러 인프라 등 1600개의 헤즈볼라 목표물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 이후 일일 기준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이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를 겨냥해 개시한 대규모 공습을 ‘북쪽의 화살’(Nothern Arrows) 작전으로 명명했다.

헤즈볼라 겨냥 이스라엘 ‘북쪽의 화살’ 공습 이스라엘이 레바논 전역의 헤즈볼라 목표물에 대한 대대적 공습인 ‘북쪽의 화살’ 작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23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자이타 지역의 한 마을에서 포격으로 흰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자이타=AFP연합뉴스

인명 피해도 레바논 내전(1975∼1990년) 이후 약 34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24일 “이틀간 어린이 50명을 포함해 최소 55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부상자를 포함하면 사상자가 2000명을 훌쩍 넘었다. 레바논 현지 피란 행렬도 2006년 전쟁 이후 최대 규모다. 수만명이 남부에서 수도 베이루트로 향하거나 공습을 피해 산속으로 피신하고 있으며, 고속도로는 6차선이 모두 차량으로 꽉 막힌 상태라고 BBC방송은 전했다. 이날 공습 전까지 이미 레바논 남부에서 발생한 난민은 11만명이 넘는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시민들의 휴대전화 등에 무작위로 경고 전화와 메시지를 돌리면서 피란민 대다수가 혼비백산이 되어 짐을 챙겨 집을 뛰쳐나온 상태다. 이스라엘군은 정부 부처, 은행, 대학 등 헤즈볼라 거점이 아닌 베이루트 지역 주민들에게도 ‘당신 동네의 테러 관련 시설을 파괴할 예정이니 당장 집을 떠나라’는 아랍어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피란길에 오른 레바논 남부 주민들의 차량이 24일(현지시각) 항구 도시 시돈에서 베이루트로 연결되는 고속도로에 몰리면서 정체가 빚어지고 있다. AP뉴시스

피란 행렬로 가득 찬 고속도로에도 폭격이 가해지면서 피란민 중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남부 도시 티레의 시장 하산 다부크는 “공습이 멈추질 않고 있다”며 “도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레바논 당국은 대학과 초·중·고등학교 대부분을 폐쇄하고 피란민들을 위한 대피소로 전환했고, 의료기관에도 “사상자 급증에 대비해 필수적이지 않은 수술은 모두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CNN방송은 이날 이스라엘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번 작전 목표를 “하마스와의 전쟁과 헤즈볼라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궤멸 직전에 몰린 하마스의 생존과 재건을 도우려는 헤즈볼라의 의도를 사전에 저지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의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헤즈볼라도 24일 오전 이스라엘 북부를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이스라엘군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북부로 80여개의 발사체가 날아왔으며 일부는 공중에서 격추됐고 일부는 빈터에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는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래 제한적 소모전을 이어왔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면전이 ‘초읽기’에 돌입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찾은 뉴욕에서 “(레바논) 상황이 매우 위험하고 우려스럽다. 거의 전면전에 돌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급증하고 있는 민간인 사상자와 공습 강도를 지적하며 “이 상황이 전쟁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처참한 폭격 현장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의 한 아파트 벽면이 부서진 가운데 한 남성이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베이루트=A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추가 공격을 공언하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공습에 대해 “지난 1년여간 이어져 온 분쟁에서 중요한 정점”이라며 “우리는 헤즈볼라가 레바논 전쟁 이후 20년 동안 구축해 온 것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지상전 개시 우려를 뒷받침했다. 지상전을 개시할 경우 완전한 전면전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의 국내 정치 상황도 전면전 가능성을 높이는 중이다. 지난 19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르당의 지지율이 24%로 1위에 오른 것. 전쟁 발발 한달후인 지난해 11월 18%에 그쳤던 지지율이 반전돼 추가 상승세까지 타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스라엘의 공습에 헤즈볼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지만 전면전이 본격화할 경우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 방공망을 뚫고 군기지와 전력망 등 주요 기반시설을 타격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진단했다. 헤즈볼라는 최근 이스라엘제 휴대용 대전차 유도미사일 ‘스파이크’를 이란이 역설계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알마스’(Almas) 대전차 미사일과 신형 자폭 드론을 도입하는 등 전력을 강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팻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 AP연합뉴스

미국은 중동 확전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공세와 헤즈볼라의 보복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레바논)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 (실무진이) 24시간 내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국방부는 중동 지역에 소규모 병력을 추가로 파견할 계획이다.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동의 증대된 긴장을 고려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차원에서 이미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그 지역(중동)에 소수의 미군 인원을 추가로 파견한다”고 말했다. 현재 중동에는 미군 약 4만명이 주둔 중이다.

 

미국은 이와 별도로 레바논에 거주 중인 자국민의 탈출을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 소통보좌관은 24일 ABC 방송에 출연해 “떠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남아있을 때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총회에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질타가 이어졌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은 싸우기를 원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이 모두를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며 “그들은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고 경고했다. 장 노엘 프랑스 외무장관은 레바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