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전남 보성군에서 69살 어부 오종근은 여행을 온 19살 대학생 커플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2007년 8월 31일 보성으로 여행을 온 김모군과 추모양에게 오종근은 “어장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말로 속여 자신의 배에 태운 뒤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들을 바다로 빠뜨렸다. 오종근은 추양을 성추행하기 위해 김군을 먼저 바다로 밀어 떨어뜨렸고 저항하던 추양 역시 바다로 빠뜨려 살해했다.
물에 빠진 김군은 다시 배에 오르려 했는데 오종근은 기다란 갈고리 장대로 김군의 머리, 어깨 등 신체를 수차례 내려치면서 배에 다시 오르지 못하게 했다. 이후 오종근은 공포에 떨고 있는 추양에게 다가가 추행했고 두려움에 추양이 반항하자 희롱한 뒤 마저 바다에 밀어 빠뜨린 뒤 올라오지 못하게 수차례 갈고리 장대로 밀었다.
같은해 9월 25일 오종근은 두 번째 피해자를 물색한 뒤 24살 직장인 여성 안모씨와 조모씨 역시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두 여성 모두 성추행하다가 저항이 심해지자 모두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했다.
당시 오종근은 키 165㎝에 왜소한 체격이긴 했으나 오랜 기간 어부생활로 다져진 완력이 있어 바다 환경과 갑판 상황에 대해 익숙했다.
반면 피해자들은 수영도 하지 못할뿐더러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20대 초반 이하의 나이였다. 유일한 남성 피해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범행현장에 나갔던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는 오랫동안 어업에 종사한 인근 주민의 “저런 조그만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출렁거리기 시작하면 건장한 장정들조차도 난간만 겨우 붙들고 일어서지 못할 정도이다”라는 말을 듣고 납득했다고 한다.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당연히 실종신고를 했고 피해자 중 추양의 시신이 바닷가로 떠밀려와 발견된 뒤 해상 수색 과정에서 김군의 시신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타살 증거를 찾지 못해 동반자살로 인한 추락사로 수사를 종결했다.
두 번째 사건 역시 피해자 한 명이 떠밀려왔고 한 명은 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는데 이 사건에서 덜미가 잡혔다. 당시 피해자는 배를 타기 전 우연히 마주친 여성에게 휴대폰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숨지기 직전 그 여성의 통화 상대였던 여성의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는 “저희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요. 배타다가 갇힌 거 같아요. 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혔다.
이 여성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선박 내부를 수색하자 피해자의 신용카드, 볼펜, 머리끈, 머리카락 등이 발견되면서 오종근은 검거됐다.
오종근은 첫 번째 사건에 대해 “그 둘은 실족사했다”라며 부인했지만 한 어선의 어망에 1차 사건 피해자의 디지털카메라가 걸려 올라왔고 결정적 증거가 됐다. 카메라에는 오종근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담겼다.
결국 그는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거된 오종근은 끝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되레 “내 배를 탄 피해자들 탓이다. 공짜로 얻어타려한 저놈들 잘못”이라며 사이코패스다운 언행을 보였다.
오종근의 범행 동기는 20대 여성의 가슴을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건은 전형적인 성범죄 사건이었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까닭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해자 오종근이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노약자로 분류될 수 있는 나이였던 오종근은 50살 넘게 차이 나는 손자뻘 젊은이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던 오종근의 자녀들은 부친의 끔찍한 범행이 알려지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오종근의 장남은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다가 사건 발생 1년 후인 2008년에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보성에 살고 있던 오종근의 딸은 언론사가 찾아가자 “아버지고 뭐고 그런 짓을 한 사람과 나는 상관이 없고 이젠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령 범죄자였던 오종근은 이례적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통상 고령 범죄자의 경우 무기징역을 선고받아도 가석방 가능 시기인 수감 20년을 맞이하기 전 복역 중 사망하기에 사형 선고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대표적이다.
이후 2심과 대법원을 거쳐 사형이 확정됐고 오종근은 현재 86세의 나이로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