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사건을 이유로 서울 휘문고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를 박탈한 교육당국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2심 판결이 나왔다. 교육 당국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을 뒤집은 결론이다.
서울고법 행정11-1부(최수환 윤종구 김우수 부장판사)는 25일 학교법인 휘문의숙이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취소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객관적 처분 사유에 대한 1심의 판단은 수긍이 가능하지만, 처분의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위임 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시행령 규정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회계를 집행한 경우 교육감은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면서 “이는 모법인 초·중등교육법 61조에서 위임받은 사항을 규정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처분의 근거가 된 시행령 조항은 지정 취소에 관한 새로운 입법을 한 것으로 위임 입법 한계를 벗어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휘문고는 8대 명예 이사장과 법인 사무국장 등이 2011∼2017년 한 교회에 학교 체육관 등을 예배 장소로 빌려주고 사용료 외 학교발전 기탁금을 받는 수법으로 38억25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2018년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됐다. 이들은 휘문고가 자사고로 지정되기 전인 2008년부터 총 52억원가량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 동의를 얻어 2020년 휘문고에 대한자사고 지정 취소를 결정했다.
휘문고 측이 낸 취소 소송 1심 재판부는 “장기간 횡령과 배임이 이뤄졌고 원고가 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서울시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결을 뒤집은 항소심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휘문고는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휘문고는 1심 판결 뒤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인용 결정을 받아내 2024학년도 신입생은 자사고로 선발한 상태다.
서울시교육청은 유감을 표명하며 상고의 뜻을 밝혔다. 설세훈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은 이날 판결에 대해 “자사고가 존치된 상황에서 사학의 회계 부정을 용인하고 비리 사학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향후 사학의 부패행위 사전 차단 및 사립학교의 재정 투명성 확보를 위한 교육청의 관리·감독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