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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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이대로 더는 안 된다

김 여사, 마포대교 시찰로 논란
주가 조작 사건도 새 국면 맞아
공천·인사 개입 의혹까지 제기
‘영부인 리스크’ 임계점에 육박

올 추석 연휴 기간에 온라인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는 단연 ‘김건희 여사’였다. 지난 13∼19일 뉴스를 장식한 주요 키워드의 구글트렌드 평균 지수를 검색한 결과에 따르면, ‘김건희’는 33으로 ‘응급실’(22), ‘물가’(14) 등 다른 이슈를 모두 앞섰다. 추석 직전 김 여사와 관련해 부정적인 뉴스가 잇따라 터져 나온 게 결정적 요인이 됐다.

김 여사가 최근 다시 민심을 자극한 악재는 지난 10일 ‘마포대교 시찰’로부터 시작된다. 명품 백 수수에 대해 얼마 전 국민권익위의 무혐의 종결처리, 검찰의 무혐의 잠정 결론에 이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불기소 권고를 내놓았다. 그러자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사과 한마디 없이 공개활동에 나섰다. 공적 권한이 없는 김 여사가 제복 경찰관을 세워 놓고 ‘조치, 개선’ 등의 용어를 동원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자료를 대통령실은 버젓이 내놓았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24일에는 직무 관련성을 인정해 김 여사에게 명품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를 기소하라고 권고하면서 김 여사의 처신은 더욱 눈총을 받게 됐다.

박창억 논설위원

감사원의 대통령실·관저 이전 공사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도 납득하기 어렵다. 숱한 불법·비위가 확인된 이전 공사에서 의혹의 핵심은 영세 업체인 ‘21그램’이 관저 공사를 맡게 된 경위다. 21그램은 김 여사가 대표이사를 맡았던 코바나 콘텐츠의 전시를 후원했던 업체다. 하지만 감사원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담당자 진술을 듣는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했다.

서울고법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2심에서 ‘전주(錢主)’ 손모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며 다른 전주인 김 여사도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더구나 23일에는 김 여사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블랙펄인베스트 전 대표 이종호씨와 검찰수사가 본격화하는 2020년 9, 10월 40여 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이 확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씨는 그동안 “(2012년) 김 여사가 결혼한 뒤로는 연락한 적이 없다”고 말해왔으나,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가장 폭발력이 강한 사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김 여사의 공천 개입설이다. 24일에는 김 여사가 22대 총선 당시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현 공직기강비서관) 공천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앞서는 명태균씨가 2022년 6·1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 당시 김 여사와의 인연을 활용해 김영선 전 의원이 공천받도록 했다는 취지로 말한 통화내용이 보도됐다. 현재까진 김 여사의 공천 관여를 입증하는 물증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만약 구체적인 증거가 확인될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부인 중 김 여사만큼 많은 논란을 야기하며 정권에 치명적인 부담을 안긴 경우는 없었다. 대선 때는 ‘허위 학·경력’,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논란으로 이슈의 중심에 섰다가, 취임 이후에도 명품백 수수,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문자 논란 등으로 파문을 불러왔다. 오래전부터 시중에는 김 여사와 관련한 온갖 소문이 흘러다닌다. 윤 정부의 인사 중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김 여사를 끼워 넣으면 설명이 된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한참 됐다.

김 여사는 2012년 12월 허위 이력 논란을 진화하기 위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품백 수수에 대한 대국민 사과, 제2 부속실 부활, 특별감찰관제 도입은 영부인 리스크를 잠재울 최소한의 조치들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아무것도 안 했다. 이젠 이 세 가지 방안으로 논란을 잠재우기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영부인 리스크’는 임계점에 육박하고 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 같은 이슈가 되어 버렸다. 윤 정부는 22대 총선 참패, 20%의 최저 지지율 등으로 여러 차례 국민의 경고를 받았다. 더는 버티고 뭉개서는 안 된다. 김 여사의 부적절한 행보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그리고 이 불길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민심에 역행하면 어떤 권력도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