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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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기회 있었다” “그런 분위기 아냐”… ‘맹탕 만찬’ 뒤끝 공방

尹·韓 갈등 ‘점입가경’

“尹에 왜 직접 독대 이야기 안했나”
대통령실, 韓대표 재요청에 격앙

친한계 “韓, 인사말도 못해” 반박
독대 요청 공개 껄끄러운 반응엔
“007작전하나? 쓴소리도 들어야”

유승민·조해진 “안하느니만 못해”
“尹·韓 감정의 골 점점 깊어져” 지적

의료대란, 김건희 여사 문제 등 현안에 대한 해법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됐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이 양측의 깊은 감정의 골만 노출하고 성과 없이 끝나자, 여당에서 “이러다 정부·여당이 끝도 모르게 추락해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국정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고, 한 대표에게는 대통령실을 견인할 정치력이 없는 상황에서 반등 포인트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윤 대통령 편과 한 대표 편으로 쪼개져 ‘네 탓 공방’을 벌이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대통령실 제공

25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선 전날 빈손으로 끝난 윤 대통령과 당 지도부 간 만찬을 두고 뒤끝 있는 입씨름이 벌어졌다. 특히 한 대표가 만찬 직후 홍철호 대통령 정무수석에게 “대통령님과 현안을 논의할 자리를 잡아 달라”며 “(독대 추가 요청을) 언론에도 공개하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는 격앙된 발언이 오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한 대표가) 만찬장에서 충분히 현안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고, 산책 때도 대통령께 직접 독대도 요청할 수 있었는데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비공개 회동을 누군가를 통해 공개적으로 요청해야 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의료개혁으로 의료인은 밤낮 사투를 벌이는데 우리끼리 모여 앉아 웃고 떠들 수 없어 차분한 분위기에서 순방 보고회 하듯 진행한 것인데 그걸 이렇게 비판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친윤(친윤석열)계인 김재원 최고위원도 MBC라디오에서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을 두고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충 짐작이 가고, 대통령이 여론에 귀를 닫고 있다는 비판 소지를 공개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라며 “자꾸 어려운 국면으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라고 대통령실에 힘을 실었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그러나 한 대표 주변에선 정반대의 반응이 나왔다. 장동혁 최고위원은 SBS라디오에서 “야외에서 식사를 했고, 테이블이 길게 있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무게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보통 그런 자리면 당대표가 인사 말씀을 하는데, 그런 기회 없이 곧바로 식사해서 현안에 대해 논의할 기회는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장 최고위원은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에 먼저 알려져 대통령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에 대해선 “대통령과 여당의 대표가 만나는 일이 무슨 007 작전(처럼)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했다. 김종혁 최고위원도 CBS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만나는 게 무슨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만찬의 성과는 저녁을 먹은 것이다. 소통의 과정으로 길게 봐주면 어떨까 싶다”며 “현안 관련 이야기가 나올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어제 독대 요청 이후 (대통령실의) 응답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조금 기다려보시죠”라며 “대통령실에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으려는 생각은 아마 저랑 같을 것”이라고 했다.

韓, 독대 재요청 응답 묻자 “기다려보시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 자리를 갖고 정국 현안을 논의하고 싶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남제현 선임기자

이를 두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지지율이 동반 추락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절박함 없이 감정싸움만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의료사태는 ‘의’ 자도 나오지 않았고, 연금개혁은 ‘연’ 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럴 거면 왜 만났느냐”라며 “최소한 의료대란을 해결할 당정의 일치된 해법만큼은 꼭 나와야 했던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조해진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어제 대통령실 당정 만찬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한 자리였다”며 “국민에게 실망만 끼치는 이런 의미 없는 식사 이벤트는 앞으로 안 하는 게 더 낫겠다”고 질타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줄 요량이었다면 독대에도 응해주고, 독대에 응하지 않았더라도 현안 논의를 하며 가닥이라도 잡아줬어야 한다. 국민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내 갈 길 가겠다는 태도”라며 “한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데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정치력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김병관·조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