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소비자 전망이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부동산 폭등기였던 2021년 하반기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컸던 영향이다. 다만, 이달 들어 집값 상승폭이 둔화하면서 부동산 시장 과열 때문에 금리 인하를 망설였던 한국은행이 다음달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설지 주목된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CSI는 119로 전월보다 1포인트 올랐다. 이는 2021년 10월 기록한 125 이후 최대치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현재와 비교한 1년 후 전망을 반영한다. 이 지수가 100을 웃돌면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소비자 비중이 하락을 예상하는 소비자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올해 1월 92에서 4월 101로 올라선 후 6개월 연속 100을 넘어섰으며, 6월부터 4개월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거래 및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주택가격이 추후에도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는 의미다. 한은 황희진 통계조사팀장은 “조사 기간 당시 7∼8월 매매거래와 가격 상승 뉴스들이 나오면서 주택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 7∼8월 서울 아파트값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주택가격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7월과 8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각각 1.19%, 1.27% 상승했다. 8월 서울 아파트값 오름폭의 경우 2018년 9월(1.84%) 이후 71개월 만에 최대치다.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하자 연립·다세대주택 시장으로 일부 수요가 옮겨가기도 했다.
부동산플래닛이 국토교통부의 연립·다세대주택 실거래가(지난 1일 기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매매 건수는 2550건, 매매거래금액은 총 1조311억원으로 집계됐다. 거래 건수는 전월과 비교해 13.7%, 거래액은 27.9% 늘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각각 32.2%, 50.9% 증가했다. 특히 월 거래액은 2022년 6월(1조2077억원) 이후 25개월 만에 처음으로 1조원대를 기록했다.
다만, 9월 들어 집값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 모두 둔화하는 흐름이다. 한은 황 팀장은 “최근에는 (주택) 거래량과 가격 상승세가 주춤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9월부터 가계대출 관리 강화 정책들이 나오면서 지수 상승 폭 자체는 둔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달 12일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말보다 2조2000억원 늘었다. 8월 한달 동안 5대 은행의 주담대가 8조9000억원,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이 9조8000억원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 폭이 다소 주춤한 것이다. 추석 연휴 영향으로 9월의 영업일수가 8월보다 적은 점을 고려하면, 4∼8월에 5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던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 폭이 9월엔 꺾일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이달 1일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가 적용되고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 인상 및 1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제한 등 전방위 대출 규제에 나선 결과다.
문제는 이 같은 주택 거래 및 가격 상승세 둔화 흐름이 지속될지 여부다. 한은은 물가가 목표치에 근접하고 있는 만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면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신성환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한은 콘퍼런스홀에서 ‘향후 통화정책 관련 주요 현안’을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하 의견을 내려고 했지만 예상치 못한 집값 급등으로 급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9월 주택시장·가계부채가 둔화하고 있다는 자료가 나오고 있다”면서도 “(둔화 흐름이) 추세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10월·11월 들어 다시 상승하면 어떡할지 걱정들을 하고 있는데, 저도 갑갑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값 상승세가 완전히 꺾일 때까지 기다리며 금리 인하를 마냥 미루지 않겠다는 의중도 드러냈다.
신 위원은 “한국은행은 최대한 균형된 시각으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같이 조절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집값 상승세 둔화) 모멘텀의 확실한 변화를 보고 갈 정도로 한국 경제가 녹록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값이 100% 안정된 다음 금리 인하를 시작할 만큼 우리 경제가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내수를 보면 금리 인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진다고 보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대통령실 등에서 한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실기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신 위원은 “한국과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가 부담이 없어진 것은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 마찬가지지만, 미국이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을 한 것은 상당히 선제적인 움직임”이라며 “우리는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기엔 (집값) 위험이 너무 크게 부각된 상황이어서, 내수만 보고 금리를 인하했다가 그 위험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로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