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키지만 꼿꼿하고 바른 자세와 다부진 체구에서 왠지 모를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가 입을 열면 ‘국민MC’ 유재석 저리가라할 재담꾼이 돼 청중을 휘어잡는다. 슬픈 이야기는 웃기게, 웃긴 이야기는 진지하게 하면서 희비극이 정신없이 교차하는 자신의 어린 시절 대서사를 시트콤처럼 풀어놓는다. 탈북 후 성경을 들고 재입북하다 붙잡혔지만 살짝 눈감아준 군인 덕에 구사일생 목숨을 구한 이야기는 듣기만해도 아찔하다. 수용소에 갇혔을 때 앞서 동사한 시신을 수습하며 언 땅을 깨야했던 일은 듣기에도 힘겨운 사연이다. 누군가는 거부감이 들법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의 결말이 ‘증오와 대결’이 아닌 ‘평화와 치유’를 사명으로 삼게 된 우리 곁의 한 청년이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보고 충격을 받아 “남조선은 이렇게 불안정한 곳인가”, “잘못왔나” 싶었다는 말에 폭소가 터지다가도 “이것이야말로 안정된 민주주의라는 역설을 체험한 계기가 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는 결론은 모범적이고 교훈적이어서 흐뭇함이 차오른다. 그는 널리 알려 마땅한 보석같은 청년이나 신분이 노출되는 인터뷰는 끝내 거절했다. 북녘에 아직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사석에서 만난 그는 누구나 호감을 가질 청년이지만, 그는 한때 님비현상 탓에 터전조차 잡지 못했던 ‘여명학교’ 출신이다.
북한이탈 청소년 1호 대안학교 여명학교가 27일 설립 20주년 기념식을 연다. 여명학교는 탈북 청소년의 남한사회 정착을 돕고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04년 설립됐다. 일반학교에 가지 못했거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학교 교훈이나 설립 철학, 졸업생들의 권유 등을 고려해 뜻을 품고 대안학교 진학 선택한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도 처음엔 검정고시를 돕는 수준의 미인가 기관이었지만 사람을 존중하고 민족을 하나로 한다는 모토 하에 전인적 교육과정을 심화, 발전시켜나가면서 어엿한 ‘학교’가 됐다. 2010, 2013년 두차례에 걸쳐 교육청의 학력 인가를 획득했고, 지금은 학생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고교 통합과정을 운영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 20년간 배출한 졸업생은 400명이 넘는다.
여명학교는 기념식에서 설립 20년 성과와 과제를 연구한 보고서 ‘북한이탈청소년 대안학교 교육성과 분석을 통한 사회통합 교육과정 개발-여명학교를 중심으로’도 공개한다. 보고서에는 재학생 93명, 졸업생 135명, 교사 11명의 심층면담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에는 어린 나이에 사선을 넘고, 차별적 시선과 정체성 혼란을 겪어야했던 학생들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고 성장해나갈 수 있게 한 교사의 헌신과 환대의 힘이 생생하다. 한 졸업생은 이렇게 증언했다.
“선생님들께서 한 명 한 명 진심으로 대하시는 게 일단 느껴졌고 수업 시간에 그냥 어떤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시다가도 ‘너희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이고 할 일들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게 그냥 말로 하는 게 아니고 정말 선생님들 스스로 그렇게 믿고 행동으로 표현됐어요.”
학교는 ‘통일과 사회통합을 선도하는 학교’라는 비전을 20년간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서울 중구 남산동 건물에서 2019년 은평구에 부지를 사서 이전하려 할 때 곤혹을 겪은 바 있다. ‘혐오시설’이라는 주민 반대로 무산된 것이다. 결국 강서구의 폐교 염강초 건물을 빌려쓰게 됐지만 이마저도 계약이 만료되는 2026년 2월에는 또다시 비워줘야 할 처지다. 상처를 입었을텐데 한 교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개교 때부터 이제 있으면서 학교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들을 지켜봤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새로 개척해 나갔던 일, 우리 사회나 학교가 처음 시작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인가를 받고 또 재정 지원도 받고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를 이전하게 된 이런 모든 걸음들이 다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미있는 걸음이 아니었나. 이런 과정도 모두 우리 교육의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통일부는 여명학교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서울시교육청과 적극적인 협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감 부재 상태인 교육청과 논의가 순조롭지만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