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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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베트남 유학생의 코리안 드림

얼마 전 지역 대학 관계자와 함께 베트남 하노이에 간 적이 있다. 현지 고등학생과 전문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생 유치 설명회는 ‘코리안 드림’ 열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예비 유학생들의 관심은 학업보다 아르바이트에 쏠려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진짜 200만원 이상 벌 수 있나요?” 이런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어디서 귀동냥을 했는지 한국의 최저임금도 꿰뚫고 있었다. 자신의 진로에 맞는 대학과 학과 선택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되는지 학업과 관련된 질문은 거의 없었다.

설명회장에서 만난 한 전문대생은 동네 선배의 얘기를 들려줬다. 5년 전 고교를 마친 동네 선배가 전남의 한 대학에 유학갔는데, 매월 부모한테 100만원씩 보내줬다는 것이다. 유학생 부모는 이 돈을 모아 논·밭을 사고 집도 새로 지었다고 부러워했다. 유학생 자녀의 도움으로 그 집은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고 했다. 이 학생은 자신도 “한국에 유학가면 매월 부모한테 돈을 보내 부자가 되고 싶다”며 아직 실현되지 않는 코리안 드림에 들떠 있었다.

한현묵 사회2부 기자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베트남 기업체의 한 달 급여는 40만∼50만원 수준이다.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만 해도 250만원은 거뜬히 번다. 한국에서 한 달 일하면 베트남에서 4∼5개월치의 급여를 받는다. 그러니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으로 유학가는 코리안 드림을 꾸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유학 온 베트남 유학생 수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9년 3만4980명에서 2023년 3만7732명으로 늘었다. 중국에 이어 국내 유학생 수가 두 번째로 많다.

매년 수천명의 베트남 학생들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유학을 온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학과 전공 등 유학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를 목적으로 유학을 오기 때문이다. 유학생활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어 구사능력이다. 일부 유학생은 몇 년간의 유학생활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능력시험 토픽(TOPIK)은 입학 당시 성적인 3급에 불과하다. 3급은 토픽 최고 단계인 6급의 절반 정도로 대학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유학생의 일부는 의사소통 부족으로 퇴짜를 맞기 일쑤다. 몇 년간이나 유학생활을 했지만 한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유학생도 적지 않다. 이들은 결국 비자연장을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모범 유학생도 있다. 2022년 동신대로 유학온 한 유학생은 얼마 전 토픽 6급을 땄다. 아르바이트보다는 학업에 충실한 대가다. 한국말도 거침없이 유창하게 잘한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그는 벌써부터 여러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다.

코리안 드림 실현의 첫발은 학업 성취다. 유창한 한국어와 전공실력을 갖춘 유학생이라면 아르바이트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한국 생활이 가능하다. 유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열중하면 더 좋은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한현묵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