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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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국 영화계의 안티인가 [이지영의K컬처여행]

요즈음 국내 영화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K컬처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엄습한다. 우리 내부에서부터 뭔가 달갑지 않은 소식들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영화 투자배급사가 최근 촬영에 들어갔거나 촬영준비 중인 영화는 10편가량뿐이다. 특히 한국 영화계를 쥐락펴락해온 CJ ENM이 제작 중인 영화는 2편에 불과하다. 이 중 신규 투자는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한 편뿐이다. 신규 투자가 이렇게 줄어들면 신인 감독들에게 주어질 기회는 아예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화의 미래를 견인할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창의적이고 기발한 시도를 과감히 해볼 수 있는 신인들에게서 올 것임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에 무조건 신인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일은 국가가 맡아야 하는 일일 테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작고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관객들에게 보여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영화 창제작 지원, 국내외 영화제 육성, 애니메이션 종합지원,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 등의 예산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대폭 삭감되거나 폐지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관련 사업’,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이 모두 0원으로 전액 삭감되고, 영화제작지원 사업과 영화기획개발지원 사업을 통합한 ‘영화 창제작 지원 예산’은 전년 대비 36% 수준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및 국제 영화제 지원’은 52억5000만원에서 25억2000만원으로, ‘독립영화제 개최지원’은 3억7000만원에서 2억9600만원으로 줄어든다. 심지어 국내와 국제영화제가 하나의 부문으로 통합됨으로써 작은 국내 영화제들의 상황이 더 나빠질 위기에 놓였다. 이렇게 작은 영화제들의 상황이 나빠지면 다양하고 작은 영화들의 창의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영화 하나 망한다고 한류라는 큰 흐름에 아무 영향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영화계가 무너진다면 도미노처럼 다른 콘텐츠 산업도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묵과한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찬물을 끼얹어서야 되겠는가. 부디 지금이라도 문화를 멀리 보는 관점으로 정부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길 바란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