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FA-50 경공격기에 대한 폴란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폴란드 연립정부는 전임 법과정의당(PiS)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을 진행하고 있다.
전 정권에서 계약이 이뤄졌던 FA-50도 거론되는 모양새다. 체자리 톰치크 폴란드 국방차관은 12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구매 결정이 며칠 만에 빨리 이뤄졌고 폴란드와 폴란드군의 이익은 고려되지 않았다”며 감사원에 철저한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KAI는 지난해 7월부터 폴란드에 판매하기로 한 FA-50 48대 중 12대(FA-50GF) 인도를 마쳤다. 훈련기 TA-50 블록2를 개량한 것이다. 현재 일부 기체가 정상적인 비행이 어려워 KAI가 대응에 나선 상태다.
나머지 36대는 항공전자장비와 무장을 강화한 FA-50PL로 2028년까지 인도할 예정이다.
폴란드의 움직임은 전 정부를 겨냥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FA-50을 둘러싼 리스크를 감안하면, 이같은 갈등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빨리 달라고 할 땐 언제고…”
KAI는 지난해 12월 폴란드에 FA-50GF 12대를 인도했다. 계약 채결 1년 3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한국은 공군이 쓰려던 TA-50 블록2 물량 중 일부를 개량해서 폴란드로 서둘러 보냈다. 정부와 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등 정부와 군 수뇌부는 전력 공백 우려에도 한국 공군용 물량을 빼서 보내는 등 폴란드 요청을 최대한 들어줬다”고 전했다.
그는 또 “(무기의) 스펙만 문제 삼아도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는데, 이제 와서 정권 바뀌니까 계약과정을 감사하겠다니(폴란드가) 한국 정부와 싸우겠다는 거냐”고 말했다.
폴란드가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FA-50 무장이다. 톰치크 차관은 “장착할 무기가 계약에 포함되지 않아 훈련 용도로만 쓸 수 있다”며 “이 기종에 맞는 무기 생산이 중단돼 중고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일부만 사실에 맞는다. FA-50GF는 한국 공군처럼 미국산 무장을 쓴다. 합동정밀직격탄(JDAM)이나 AGM-65 공대지미사일, 무유도 폭탄 등은 F-16도 사용한다.
폴란드는 F-16을 운용하므로 F-16 무장을 일부 전용하고, 차후에 미국에서 부족분을 구입해도 된다.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 공군 FA-50과 폴란드 FA-50GF는 AIM-9M을 장착한다.
AIM-9M은 1983년 미 공군에 처음 인도된 무기다. 한국은 1990년대 초에 들여와서 지금도 수백발을 보관하고 있다. 한국 공군 FA-50에선 큰 문제가 없다.
폴란드는 최신형인 AIM-9X만 있다. M형을 따로 구해야 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M형과 시스패로 등의 중고 유도무기들이 대거 우크라이나에 넘어가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상황에선 FA-50GF가 공중전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는 폴란드 전임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폴란드 전임 정부는 자국 공군 무기고에 AIM-9M형이 없다는 것을 무시한 채 FA-50GF을 빨리 들여오는데만 급급했다. 폴란드 요구에 맞춰 기체를 공급한 한국에 전적으로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KAI도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폴란드에 FA-50 시뮬레이터를 비롯한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속도는 세계 전투기 거래와 비교하면 늦지는 않다는 평가다.
다만 FA-50이 탑재하는 항공무장이 사거리가 짧아 현대전을 치르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도 혁신적인 공격력 강화를 서두르지 못해 폴란드가 트집잡을 여지를 줬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폴란드에 FA-50PL, 말레이시아에 FA-50M을 공급하는 것을 계기로 공격력 강화에 중점을 둔 FA-50의 성능향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FA-50PL을 둘러싼 리스크는
2028년까지 KAI가 폴란드에 넘길 FA-50PL 36대는 더 복잡한 잠재적 리스크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폴란드 현지와 한국 방산업계 등에 퍼져 있다.
폴란드 현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FA-50PL은 미국 RTX(옛 레이시온) 팬텀 스트라이크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와 AIM-9X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이 탑재된다.
F-16에 X형을 쓰고 있는 폴란드군은 FA-50PL에도 X형 사용을 선호했고, KAI도 이를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FA-50PL에 어떤 무장과 장비를 탑재할 것인지는 정해졌지만, 실현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다.
FA-50PL은 이해관계자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레이더와 미사일은 RTX, 체계통합은 록히드마틴, 전반적인 조립 및 납품은 KAI가 맡는다.
무장과 관련해 미국 정부 승인이 필요한 것도 있다. 폴란드가 원하는 AIM-120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탑재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2개국 정부와 3개 업체가 참여하는데, 새로운 항공기 구성의 성패는 미국에 달려 있는 셈이다. KAI가 최선을 다해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포괄적 승인을 해주는 게 이상적이지만, 폴란드와 KAI의 뜻대로 될지는 불확실한 이유다. 미국은 KF-21에 AIM-120을 체계통합하는 것을 거부한 전례가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톰치크 국방차관은 의회에 출석해서 “FA-50 현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기대한다. 미국이 FA-50 무장 관련 요소에 동의해야 한다”면서도 “계약이 성사된 이후에는 협상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기술과 재정적 변수에 따른 리스크도 있다. 일반적으로 성능 및 항공무장과의 체계통합이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는 신형 레이더에 미사일·유도폭탄 등을 체계통합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잠재적 리스크가 적지 않다.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문제가 무엇인지 예측하기 어렵고, 이를 찾아내서 수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비용도 상당한 수준이다. 한국 공군 F-15K에 타우러스 공대지미사일을 체계통합하는데 수백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외국 기업의 용역은 견적이 높다는 점, 향상된 공대지·공대공 능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FA-50PL 체계통합비는 1000억원을 훨씬 넘어설 수도 있다. 이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
폴란드에서 자주 거론되는 AIM-120과 FA-50PL의 통합도 논란이 될 수 있다. KAI는 이와 관련한 타당성 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정치적 요인이든 기술적 원인이든 AIM-120 장착이 어려워지면 폴란드에서 논란은 불가피하다. FA-50PL은 미그-29를 대체하는 기종이다. 미그-29는 중거리 공중전 능력이 있었다. 폴란드 내에서 FA-50PL도 그만한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는 기류가 있는 이유다.
그런데 AIM-9X만 장착된다면 중거리 공중전이 불가능하다. 유럽 MBDA가 만든 아스람 공대공미사일은 최대사거리가 60㎞에 달하므로 이같은 문제를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지만, 무장 교체도 시간과 비용 문제가 있다.
항공무장 가격 상승도 문제다. 냉전 종식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한 무기공장 생산능력,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교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수요 폭증이 겹치면서 항공무장 중 가격이 급등한 품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KF-21에도 장착되는 독일산 IRIS-T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1발당 가격이 3억∼4억원이었다. 지금은 10억원을 넘어섰다. AIM-9X도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
AIM-120도 우크라이나에서 활약한 나삼스(NASAMS) 지대공미사일체계에 사용되는데다 세계 각국의 군비증강 움직임이 겹치면서 수요가 늘었고, 이로 인한 가격 상승 조짐도 엿보인다.
물건 값은 한 번 오르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항공 무장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FA-50의 폴란드 수출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박하게 전개된 동유럽 정세 속에서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덕분에 수주는 했지만, 레이더와 항공무장 및 체계통합 등에서 잠재적 기술·비용 리스크를 남기게 됐다.
폴란드의 정권교체와 더불어 이같은 문제가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양새다. 감사 카드까지 꺼낸 폴란드 현 정부의 움직임과 FA-50PL 개발과정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