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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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베지플레이션(Vegeflation)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김치 없이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1985년 나온 가수 정광태의 노래 ‘김치 주제가’이다. 김치가 왜 한국인의 소울푸드인지를 알려준다.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장만하기 위한 김장은 통상 입동을 전후해서 한다. 입동이 한참 지나면 배추가 얼어붙거나 싱싱한 김장 재료가 줄어서 김치 담그기가 어려워진다. 김장 문화는 2013년 12월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김장의 주재료인 배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27일 기준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평균 9963원으로 조사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0.9% 비싸졌다. 소비자들이 실제 마트에서 느끼는 체감가격은 배추 1포기당 2만원에 이른다. 최근까지 이어진 역대급 폭염 탓이다. 저온성 식물인 배추는 섭씨 20도 안팎에서 잘 자라지만, 배추의 결구(속이 차는 현상)를 위한 최적 온도는 15∼16도다. 배추 생육이 부진해 가을배추가 본격 출하되는 11월 초까지는 공급량 감소가 우려된다.

‘한우보다 비싼 배추’, ‘金배추’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상기후로 ‘베지플레이션’(Vegeflation·채소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차라리 사 먹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대형마트엔 연일 포장김치 ‘오픈런’이 벌어진다. 배추 수급 불안정으로 대상과 CJ제일제당 등 주요 김치 제조업체들이 포장김치 생산을 중단하거나 판매를 일시 중단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어제 “다음 달 10일을 전후로 준고랭지 배추 물량이 늘어 공급량이 다소 안정될 것”, “11월 중순∼12월 초 김장용 배추는 염려 없다”고 했지만 걱정이 앞선다. 출하장려금 지원과 할당 관세 적용, 중국산 배추 수입은 임시처방일 뿐이다. 배추 같은 엽채류는 가격 탄력성이 작아 공급이 조금만 줄어도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금사과’ 논란과는 결이 다르다. 기호품인 사과는 비싸면 안 먹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김치는 다르다. 정부가 스마트팜 확대, 품종 개발, 공급망 다변화 등 ‘기후변화 대응 농산물 수급 안정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김치라도 편히 먹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기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