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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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베이루트 도심 첫 공습… 확전 일로 [중동 전선 확장]

헤즈볼라 분쟁이후 레바논 수도 첫 공격
후티반군도 폭격… ‘저항의 축’ 군사작전
중동질서 재편 움직임… 이란 보복 고심

네타냐후 ‘3면전’ 수행 자신감… 하메네이는 ‘진퇴양난’

네타냐후, 라이벌 정당 손잡고
연정 확대해 안정적 과반 확보
“비비 왕이 돌아왔다” 언급 나와

이란 지도부선 보복 놓고 격론
레바논 파병 가능성엔 선 그어
CNN “이란, 이스라엘 공격 계획”
헤즈볼라도 군사작전 지속 의지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도심을 처음으로 공습했다.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시내 중심가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분쟁이 시작된 지난해 10월7일 이후 처음이다.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에서 1700㎞ 떨어진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도 폭격하면서 전선을 확대하는 등 중동 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본격적 채비에 나섰다.

참혹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예멘 후티 반군 시설에 대한 폭격으로 서부 항구도시 호데이다에 불길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모습. 호데이다=신화연합뉴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새벽 베이루트 서남부의 주택가 알콜라에 있는 주거용 건물 한 채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았다. 폭격으로 헤즈볼라와 연계된 수니파 무장단체 자마 이슬라미야 조직원 1명이 숨졌고 적어도 16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계열 강경파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의 지도부 3명도 이번 공습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9일에는 예멘 반군 후티의 근거지도 폭격했다. 예멘 반군이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으로 즉각적 보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까지 ‘3개의 전선’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하는 중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27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한 뒤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수년간 바꿀 수 있다”면서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친이란 무장세력 연합체 ‘저항의 축’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자신감에 찬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설욕전에 나서 지난 7월 헤즈볼라 고위 지휘관과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야를 암살했고, 27일에는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를 암살했다.

참혹 이스라엘군이 30일(현지시간)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베이루트 지역 중심가를 공습해 시내 건물과 주차된 자동차들이 심하게 파손된 채 방치돼 있다. 베이루트=AP연합뉴스

특히 네타냐후 총리는 최우방인 미국이 헤즈볼라와의 휴전을 촉구한 지 하루 만에, 미국에 별도 통보 없이 나스랄라 암살 작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 확대로 이란 참전을 포함한 확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동맹국들과 적대국들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셈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국내적으로도 연정을 확대하며 입지를 다지는 상황이다. AP통신 등은 네타냐후 총리의 오랜 라이벌 기드온 사르가 이끄는 우파 정당 ‘새로운 희망’이 네타냐후 총리 연립정부에 합류한다고 보도했다.

 

의회 의석 4석을 가진 새로운 희망이 연정에 합류하면서 네타냐후 총리 내각이 확보한 의석은 전체 120석 중 68석으로 늘어 과반을 확고히 굳히게 됐다. 이번 연정 확대 조치로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내 극우 파트너의 영향력에서도 한층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나흐만 샤이 전 디아스포라(재외동포)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별칭) 왕이 돌아왔다. 비비를 10개월 전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독주 배경으로는 이란이 중동 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AP연합뉴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 등에 따르면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레바논 파병 가능성과 관련해 “어떤 요청도 없었다”며 “추가 병력이나 의용군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칸아니 대변인은 “레바논은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을 물리칠 능력이 있다”며 “저항세력은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파병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으로 전쟁 개입 여부를 둘러싼 이란 내부의 진통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란 지도부 내부에서 대이스라엘 보복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촉발됐다고 전했다. 강경파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전선을 이란으로까지 옮겨오기 전에 얼른 이스라엘을 타격해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저항의 축 구성원들이 당하는 굴욕을 구심점인 이란이 그대로 방치할 경우 네트워크 운용 동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렸다. CNN방송은 이날 미 당국자를 인용, 이란이 나스랄라 암살 뒤 이스라엘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하고, 미 군사 태세의 변경과 함께 공격을 막기 위한 공동 방위가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면 온건파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내민 미끼를 물어 전쟁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반체제시위의 불씨가 여전한 상황인 데다 서방 제재로 고립된 경제가 전쟁으로 치명상을 입으면 체제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온건 성향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취재진에게 “이스라엘이 무기를 내려놓으면 우리도 무기를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긴장 완화를 촉구한 바 있다. 이란 최종지도자이자 최종결정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역시 지난 29일 성명을 통해 “저항군의 운전대를 잡고 이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헤즈볼라일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새넘 배킬 중동국장은 NYT에 “하메네이의 성명에서 이 순간의 심각성과 조심성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막강한 정보력과 군사적 전술 능력을 과시하며 잇달아 ‘저항의 축’ 지도부 암살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사례를 되짚어보면 지도자 암살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저항의 축 무장세력을 무너뜨리거나 약화하지는 못했으며, 이번에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CNN은 나스랄라 살해가 이스라엘에 단기적으로 중요한 보상이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40년간 유지되어온 헤즈볼라는 조직을 재건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임명한 뒤 다시 이스라엘에 저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헤즈볼라 2인자 나임 가셈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적과 계속 마주하겠다”면서 “우리는 전투 지속 계획에서 최소한의 부분만 이행하고 있을 뿐이며 전투는 길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2006년 이스라엘과 대항했을 때처럼 승리할 것이며,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18년 전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에 납치된 군인 2명을 구출하려 국경 ‘블루라인’을 넘어 레바논에 지상군을 투입했다가 병력 121명을 잃고 34일 만에 교전을 마무리한 일을 가리킨다.

 

나스랄라 암살로 공석이 된 헤즈볼라의 수장 자리에는 나스랄라의 사촌이자 헤즈볼라 집행이사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는 하심 사피에딘이 임명됐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