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상대로 레바논 남부에 지상전을 개시했음에도 레바논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이 2년째 공석 등 현 정부가 사실상 마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전날 밤 레바논 남부 국경 인접 지역을 군사제한구역으로 선포하고 통제하자 접경지에 주둔해 있던 레바논 정부군은 최소 5㎞ 후방으로 병력을 철수했다.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을 예고하자 충돌을 피해 철수한 것이다.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분쟁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 애당초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라서다.
레바논 대통령은 2022년 10월 이후 공석 상태다. 레바논의 독특한 권력 분립 체제와 그로 인한 정치권의 부패·무능 탓이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을 치른 레바논은 내전이 끝나자 세력 균형을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체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이 종파 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전임 미셸 아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이후 후임 대통령을 뽑기 위한 의회 투표가 번번이 결렬됐다. 각 종파는 협치를 거부하고 각자의 ‘배 불리기’에만 집중하고 있어 정치적 교착 상태가 타개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레바논 정부군도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레바논의 치안 관리는 유엔의 레바논 평화유지군이 담당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지상 침공을 강행하면서 이란의 참전 여부에 국제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30일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며 참전을 자제해 온 이란을 자극하듯 이란 국민을 향한 이례적 공개 메시지를 냈다.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이란 페르시아어 자막이 붙은 영어 영상 성명에서 “이스라엘은 여러분(이란 국민)과 함께한다”며 “이란이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는 순간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며,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를 상대로 한 지상전을 시작하며 그 명분 중 하나로 ‘이란 국민의 자유’를 내세운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다수의 이란인은 정권이 자신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이란 정권이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다면 중동 전역에서 쓸데없는 전쟁으로 수십억 달러를 낭비하는 것을 멈출 것”이라며 이란 지도부를 공격했다. 이란의 권위주의 정권을 향한 국민 여론을 악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여러분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지하지 않지만, 여러분의 지도자들은 지지하고 있다”며 분열을 조장하는 발언도 담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끝으로 “이스라엘과 이란 두 나라는 결국 평화롭게 될 것”이라며 “소수의 광적인 신정(神政)주의자들이 여러분의 희망과 꿈을 짓밟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은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의 이례적 메시지에는 가자지구 전쟁 이래 전면 개입을 자제하고 있는 이란 정부를 자극하기 위한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강경파를 자극해 개입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강경파 사이에서는 아예 ‘저항의 축’을 지원하는 이란과의 전면 대결을 통해 중동 내 반이스라엘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