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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만 노는 게 아니었네?”…반년째 방구석 ‘장기백수’ 무려 20% [일상톡톡 플러스]

실업자 5명 중 1명 “6개월 이상 장기 구직중”…25년만에 최고

장기 실업자의 증가,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의 단면으로 해석

“눈높이 맞는 일자리 구하지 못하면서 구직 기간도 늘고 있어”

실업자 5명 중 1명은 반년 이상 구직활동을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기사 특정내용과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반년 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 수는 최근 6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실업자 수는 56만4000명이었다.

 

이중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사람은 11만3000명으로 20.0%를 차지했다. 이는 전월을 통틀어 외환위기 여파가 있던 1999년 8월(20.1%) 이후 2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10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증가세를 이어가며 10만명을 웃돌다가 이후 감소세로 전환해 대체로 10만명을 밑돌았다.

 

장기 실업자 수는 올해 3월부터 늘기 시작해 지난 8월까지 6개월째 증가했다. 지난 7월까지는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전체 실업자 수는 지난 7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감소로 전환해 두 달째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체 실업자는 줄어드는데 장기 실업자는 늘면서 이들 비중이 가파르게 높아진 것이다.

 

장기 실업자의 증가는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의 한 단면으로 해석된다.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구직 기간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직장에 다닌 지 1년이 넘지 않은 장기 실업자 중 이전에 직장을 그만둔 사유가 '시간·보수 등의 작업여건 불만족'인 비율이 24.7%였다.

 

'임시 또는 계절적 일의 완료'(26.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직장에 다니는 도중 그만둔 사유로는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는 '쉬었음' 증가와도 맥이 닿는 부분이다. '쉬었음'에는 취업 의사가 없는 사람, 취업 의사가 있어도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서 직장을 찾지 않는 사람 등이 포함된다.

 

지난 8월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쉬었음'은 작년 같은 달보다 24만5000명(10.6%) 늘어난 256만7000명이었다. 이는 8월 기준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후 역대 가장 많은 것이다.

 

실업률이 처음 1%대로 떨어졌으나, 고용의 질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직장에 다닌 지 1년이 넘지 않은 장기 실업자의 이전 직장을 산업별로 보면 도소매업(18.9%), 제조업(15.9%),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13.7%) 등의 순으로 많았다.

 

도소매업은 온라인 가속화·무인화 등의 구조적 변화로 취업자 수가 지속 감소하고 있는 산업이다. 제조업은 수출 호조에도 고용 파급 효과가 크지 않은 반도체가 호조의 중심이 되면서, 최근 취업자 수가 줄고 있다.

 

이전 직장을 종사상 지위별로 보면 상용근로자(44.8%), 임시근로자(36.3%), 일용근로자(13.3%) 등의 순으로 많았다.

 

19일 한 청년이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통계청은 올해 3년 이상 장기 미취업 청년 23만8000명 중 3년 이상 취업 준비없이 보낸 청년이 8만2000명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최근 3년(2022∼2024년) 중 가장 큰 수치다. 연합뉴스

 

청년층 '장기 실업'과 '쉬었음'은 모두 '일자리 미스매치'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자리 미스매치'의 주된 이유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이 꼽힌다.

 

최근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 팬데믹 이후 플랫폼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배달 라이더로 대표되는 단순 일자리가 큰 폭으로 늘었다.

 

불안한 청년 고용은 소비를 제약하면서 내수 부진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통계청 '빅데이터 활용'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대 이하의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지난해 3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로 돌아선 뒤 올해 8월까지 -9~-10% 수준을 맴돌고 있다.

 

장기 실업자의 증가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취직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은행 고용분석팀 송상윤 과장과 김하은 조사역이 2021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실업 기간이 1개월 증가하면 취업 확률을 1.5%p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청년층 장기 실업자가 늘고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 것은 이른바 '역동 경제'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저성장이 고착하는 상황에서 경기도 안 좋다 보니 일자리 미스매치가 장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