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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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3A.M.] 힌덴버그 캠페인

AI기업 SMCI 회계부정 고발한 美 행동주의 펀드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영풍의 캠페인戰 점입가경

AI 서버를 만드는 미국 기업 슈퍼마이크로컴퓨터(SMCI)는 엔비디아의 시간에 가장 잘나가는 기업 중 하나다. 올해 1월 30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두 달 만에 100달러를 돌파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난 지금 주가는 다시 40달러로 내려앉았다. 회계부정 스캔들 때문이다.

SMCI는 지난 4월 내부자 고발에 이어 강력한 빌런을 만났다. 힌덴버그 리서치(힌덴버그)다. ‘공매도 자객’으로 불리는 행동주의 투자사 힌덴버그는 지난 8월 말 3개월에 걸친 조사 보고서를 내 SMCI의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법무부 조사가 시작됐다.

2017년 금융시장에 등장한 힌덴버그는 행동주의 펀드 중에서도 독특한 전략을 구사한다. 힌덴버그는 한 기업을 타기팅하고 블록버스터 고발 보고서를 낸다. 그리고 해당 기업에 대한 공매도로 수익을 챙긴다. 투자사이지만 탐사보도 미디어에 가깝다. 힌덴버그는 자사 소개글에서 스스로를 ‘수사식 금융 연구 전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는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되는 펀더멘털 분석도 하지만, 가장 임팩트 있는 조사 결과는 비전형적 출처에서 얻은 미공개, 미발견 정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고 적고 있다.

이들은 주시하는 미공개 정보로 해당 기업의 회계부정, 미공개 거래, 불법적·비윤리적 거래나 재무 관행, 미공개 규제·제품 및 재무 문제가 대상이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 보고서가 나온 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64명을 사기혐의로 기소했고, 법무부가 14명을 형사고발했으며 외국 규제 기관이 4명을 제재하거나 기소했다고 실적을 자랑하면서 ‘성공’시킨 개별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고 있다.

힌덴버그를 설립한 네이선 앤더슨은 마흔살의 언더독이다. 국제경영학을 공부했다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이력이 없다. 대학 졸업 후 데이터 회사에서 일하면서 “투자사들이 적당히 타협해 찍어낸 듯한 보고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 창업의 동기였다.

힌덴버그가 시장에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것은 2020년 9월 니콜라 사태다. 그해 6월 수소트럭으로 나스닥에 화려하게 상장했던 니콜라는 실체 없는 기술로 사기를 쳤다는 힌덴버그의 폭로로 시장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악명높은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 인도의 3대 재벌 가우탐 아다니가 표적이 됐다.

힌덴버그는 공매도로 수익을 챙기기 위해 근거가 빈약한 의혹이나 허위 사실을 함부로 제기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강력한 논쟁을 만들고 판을 흔드는 능력이 있는 것도 틀림없다. 힌덴버그는 금융시장에서 기존 투자사들이 금기시하던 영역을 파고들어 언더독으로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최근 75년 동업이 파탄 난 고려아연과 영풍이 경영권 분쟁 중이다. 공개매수 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는 모른다. 고려아연이 대항매수에 나서면서 이제 본격적인 ‘쩐의 전쟁’ 단계로 진입했다. 그런데 이번 분쟁 과정에서 목격한 또 하나의 현상은 실전 위에서 전개된 여론전이다. 양사 간 보도자료, 입장문, 기자회견이 계속 교차하며 여론을 선점하려는 시도가 치열하다.

특히, 영풍과 MBK파트너스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한 고려아연은 스스로를 피해자, 방어자의 위치로 두고 명분과 이해관계자를 총동원한 전략을 쓰고 있다. 울산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활용해 지역사회를 끌어들였는데, 울산에서 고려아연 주식 갖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또 고려아연이 가진 기술을 토대로 국가에 핵심지정기술 신청도 했다. 지금 정부에 설득력 있는 경제안보 논리와 반중 정서를 건드리는 의도다. 캠페인이 돈을 압도해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캠페인 없는 돈은 힘이 없을 것이다.


이인숙 플랫폼9와4분의3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