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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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들인 지역상징 조형물 혈세낭비 논란

지자체 공공조형물 전국 1만5000점
1조 넘게 투입 불구 곳곳 애물단지

울산, 10m 왕관조형물 놓고 ‘시끌’
“상권 활성화” “전시 행정 불과” 갈등
무주도 70억 들여 로봇태권V 추진
“경관훼손·예산 낭비” 지적 일어

로봇태권V를 떡하니 세우고, 15년 전 설치한 가마솥을 그대로 방치하는 등 지역 상징 조형물 설치와 사후 관리를 두고 혈세 낭비 논란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억원을 들여 지은 조형물이 애물단지가 됐거나 관리부실로 지역 흉물로 변한 사례는 전국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2일 세계일보가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방자치단체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 방안’ 점검 결과서를 파악한 결과, 국내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수는 1만5000여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작품 1점당 평균 제작비는 1억7900만원, 현재까지 설치된 작품의 비용을 모두 더하면 1조1254억원가량의 예산이 사용됐다.

 

울산 왕리단길 조형물 조감도. 오른쪽 사진은 전북 무주군이 추진했던 태권브이랜드 조감도. 울산 남구·무주군 제공

일례로, 울산 도심 한가운데서는 10m 크기의 왕관 조형물(조감도) 건립이 추진된다. 울산 남구는 2일 “남구 달동 음식점 밀집지역인 ‘왕리단길’ 한복판에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형물은 왕관모양으로, 13억원을 들여 높이 10m, 지름 30m 크기로 만들어진다. 왕관 모양으로 만드는 건 남구 달동지역에 얽힌 ‘왕생이’ 설화 때문이다. 왕생이 설화는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지리가가 달동을 살펴본 뒤, 쇠말뚝을 박더니 ‘왕생혈(王生穴)’이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왕이 날 자리‘라는 뜻이다. 왕관 조형물 준공 시기는 내년 하반기 이후다.

문제는 왕관 조형물 설치 시기와 방법 등을 두고 찬반 논란이 첨예하다는 점이다.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세계 최대 성경책, 물 위로 떠오르는 불상에 이은 거대 조형물 만들기로,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인서 남구의원은 “조형물의 크기를 무작정 크게 키우는 무리한 사업 변경으로 도심 연약지반 등 문제가 발생했다. 이렇다 보니 조형물 설치 사업 예산도 계속 이월되고 있는 문제 있는 조형물 설치 사업이다”고 주장했다. 앞서 울산시는 지난해 5월 250억원짜리 울산판 ‘큰바위얼굴’을 만들려다 철회했다. 국도변 야산에 국내그룹 창업주 3~4명의 흉상을 높이 40m 크기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같은 해 9월 세계에서 가장 큰 성경책, 바다 위로 뜨는 불상, 커다란 원형 공중정원 등을 만들겠다고 밝혀 찬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북 무주군은 향로산(해발 420m) 정상에 대형 로봇태권V 조형물을 설치하려다 환경파괴 우려 등 논란을 빚자 장소를 태권브이랜드로 옮겨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약 70억원의 사업비를 들인 로봇태권V는 높이 12m 크기다. 대전시는 중앙시장 내 건물에 2019년 9100만원을 들여 금속 재질의 대형 냄비(무게 1.5t)를 설치해 “뜬금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충북 괴산군이 2005년 만든 43.5t짜리 거대한 가마솥은 15년 넘게 기름칠 등 관리유지만 하며 흉물처럼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은 189㎏의 황금바둑판을 추진했다가 혈세 낭비라는 거센 비판을 샀다. 황금바둑판 순금 매입가는 총 100억8000만원이다.

김지훈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런 조형물 설치 사업들은 대체로 단체장의 취향이나 사업의지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공적 공간에 조형물을 세우면서 경관은 훼손되고, 예산은 예산대로 쓰이며, 시민의 만족도는 떨어지는 일이 잦은 만큼 추진을 지양하고,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