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은 생애 거의 대부분을 독일인으로 살았지만 출생지는 오스트리아다. 그가 태어난 1889년 당시 오스트리아는 지금 같은 소국이 아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불리는 중유럽의 강대국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히틀러는 독일 뮌헨으로 이동해 독일군에 자원 입대했고 자연스럽게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군 복무를 기피한 이유를 놓고서 그의 지독한 인종주의 때문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듯하다. 게르만족 우월주의자인 히틀러가 보기에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슬라브계 주민들이 잡다하게 섞인 오스트리아군은 약체에 불과했다. 게르만족 순혈주의가 강한 독일군에 들어간 것은 히틀러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1933년 독일의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 눈독을 들였다. 그가 보기에 같은 언어를 쓰고 역사적·문화적으로도 깊숙이 엮여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한 나라가 되는 것이 마땅했다. 1차대전 패전을 딛고 다시 군사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독일은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만다. 그로부터 나치 독일이 몰락한 1945년 5월까지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일부였다. 2차대전 기간 독일이 점령한 유럽 국가들은 보호령이나 식민지 같은 처지로 전락했으나 오스트리아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오스트리아 주민들은 독일 국민으로서 독일군에 입대해 연합군 장병들과 싸웠다. 그 상당수는 나치 당원이 되었고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등 전쟁 범죄에도 가담했다.
쿠르트 발트하임(1918∼2007)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이 나라의 굴곡진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앞서 유엔 사무총장 근무를 마친 발트하임이 오스트리아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1985년 그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복무하며 나치와 연관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심지어 민간인 학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증거까지 제시됐다.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확산했으나 오스트리아 국민은 아랑곳 않고 그를 임기 6년의 대통령으로 뽑았다. 역사가들은 “2차대전 기간 독일의 일부였다가 전후 독일에서 분리된 오스트리아는 과거사에 대한 책임까지 덩달아 면제됐다”고 지적한다. 전범으로 지목된 독일이 비난과 벌칙을 받는 동안 오스트리아는 ‘우린 독일과 다른 나라’ 하며 은근슬쩍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실시된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원내 1당에 등극했다. 1950년대에 이 정당을 결성한 이들은 과거 나치 독일에 부역했던 인사들이다. 자유당 헤르베르트 키클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인민의 총리가 되겠다”고 약속했는데, ‘인민의 총리’란 원래 히틀러가 즐겨 쓴 용어라고 한다. 게르만족 아닌 이민족 유입을 막겠다며 “오스트리아를 (게르만족의) 요새로 만들겠다”는 말도 했다고 하니 히틀러의 재림(再臨)을 보는 듯하다. 녹색당 출신인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현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9월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독일뿐 아니라) 오스트리아도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80세를 넘긴 노(老)대통령의 고언에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