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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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어디가 제일 좋았니

엊그제 딸아이와 딸아이 친구, 그 친구의 엄마, 나까지 모두 넷이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처음에 나는 경주가 아니라 가까운 바닷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만 8세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여름 끝물의 바닷가만큼 무난한 여행지도 드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아이 친구의 엄마가 대뜸 경주를 제안했다. 대체 불가능한 경주만의 매력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이들에게 신라 유적지들을 둘러보는 경험이 간접적인 역사 공부가 되니 교육적으로도 그보다 좋을 수는 없다는 그의 말에 나는 기꺼이 설득당했다.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불국사에 가면 아이들에게 석축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라고 해야지, 석가탑 앞에서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 대릉원에 가서는 능과 총과 묘의 차이에 대해 알려주어야지, 첨성대도 가고 안압지도 가고 남산에도 올라야지, 하며 나는 책장 구석에 꽂혀 있던 경주 관련 서적을 모조리 꺼내 탐독했다.

물론 이런저런 변수가 많아 욕심만큼 많은 곳을 둘러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주요 유적지들은 거의 다 갔다. 알고 보니 나처럼 아이 친구 엄마도 경주를 특별히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결혼 후 십여 년째 못 갔던 터라 둘 다 이번 여행에 대한 감회가 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각자 경주에서 간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이번에 처음 가보았다는 남산을, 나는 늘 갔어도 여전히 좋은 노동동 노서동 고분군을 꼽았다. 그가 아이들에게도 색다르고 유익한 여행이 된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이게 다 그가 경주를 추천한 덕분이라며 나도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때 뒷좌석에서 딸아이가 불쑥 말을 보탰다. 난 거기가 좋았는데. 응? 청개구리 잡았던 거기 말이야. 들어보니 나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 거기가 왜 좋았나. 박혁거세 신화가 흥미로웠나 싶었는데 웬걸,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야 청개구리를 세 마리나 잡았으니까 좋지. 아이 친구도 곧 합세했다. 제가 좋았던 곳은요. 들어보니 남산 불곡마애여래좌상을 말하고 있었다. 오, 그럴 만하지. 외할머니처럼 자상해 보이는 부처의 미소가 좋았겠지 추측하는데 웬걸, 아이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거기 솔방울이 많았잖아요. 그거 던지면서 노는 게 진짜 재미있었거든요.

승용차 안이 한동안 조용했다. 아무려면 어떤가. 저마다 가장 좋았던 장소가 따로 있고 그 이유가 분명하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만족하니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여행이었다.

김미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