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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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그리고 ‘칸 카르데쉬’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부산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는 한국어 외에 외국어로 영어, 프랑스어, 튀르키예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고 프랑스어도 유엔 공용어 지위를 누린다. 그런데 튀르키예어 페이지를 따로 둔 것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기념공원에 안장된 유엔군 참전용사 수를 헤아려보면 궁금증은 곧 풀린다. 6·25전쟁 당시 튀르키예군 전사자 460여명이 고국 대신 부산에 묻혀 있다. 영국군 전사자 890여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기념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이들이 대부분 6·25 참전용사들의 후손이란 점을 감안하면 튀르키예어 서비스 제공은 당연한 조치라고 하겠다.

 

국군의날인 지난 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빌랄 두르달르 튀르키예 국방부 차관(오른쪽)이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가운데)과 함께 튀르키예군 등 유엔군 참전 관련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6·25전쟁 기간 튀르키예가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한 병력은 연인원 2만1200여명에 달한다. 미국(178만여명), 영국(5만6000여명), 캐나다(2만6000여명)에 이은 4위 규모다. 튀르키예군 전사자는 1000명이 조금 넘으며 그중 절반 가까운 인원이 부산에서 영면에 들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3층 튀르키예 전시실에는 튀르키예어로 ‘우리는 하나다’라고 적힌 튀르키예 국기가 전시돼 있다. 6·25전쟁 당시 튀르키예 갈라타사라이 고교 학생들이 자국 장병들을 응원하기 위해 손가락에서 흘린 피로 글씨를 쓰고 저마다 손도장도 찍었다고 한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대목이다. 양국을 괜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2023년 2월 초 튀르키예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수많은 집과 건물이 무너지고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튀르키예는 6·25전쟁에서 피로 맺어진 형제의 나라”라며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직접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을 방문해 살리 무랏 타메르 대사의 손을 꼭 잡은 채로 “튀르키예 국민이 좌절과 슬픔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나라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위로했다. 대사관 측은 “진실되고 따뜻한 형제애를 보여준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께 감사를 표한다”며 고마워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튀르키예 전시실을 장식한 튀르키예 국기. 6·25전쟁 당시 튀르키예 갈라타사라이 고교 학생들이 손가락 피로 그려 한국에 보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적혀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홈페이지

국군의날인 지난 1일 빌랄 두르달르 튀르키예 국방부 차관이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은 “튀르키예 군인들이 6·25전쟁 고아들을 보살피고 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의 교육에 헌신한 사실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인사했다. 이에 두르달르 차관은 “튀르키예 국민들도 한국인을 ‘칸 카르데쉬’(Kan Kardes: 피로 맺은 형제)라고 부른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기념관 내 전시물을 본 뒤 “미래 세대들이 꼭 방문해야 할 역사적 장소”라고 평가했다. 전쟁기념관이 한국·튀르키예 간 우정을 더욱 공고히 하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