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의 전쟁을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에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 확대는 1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에서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뻔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거듭되는 휴전 요구를 외면한 채 작전 지시만 내리고 있다.
4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바이든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출입기자 대상 정례 간담회에 몸소 참석했다. 원래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이 취재진과 일문일답을 나누는 자리인데, 이날은 특별히 바이든이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대답했다.
바이든은 가자 지구 휴전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선 답변의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의 태도를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네타냐후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 주요국은 가자 지구에서의 전쟁을 멈추는 휴전을 받아들일 것을 이스라엘에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군사 작전을 계속 명령하는 중이다.
가자 지구 전쟁은 꼭 1년 전인 2023년 10월 발발했다. 가자 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납치하자 이스라엘군이 보복에 나선 것이다. 이후 현재까지 가자 지구에선 하마스와 무관한 어린이, 여성까지 포함해 민간인만 4만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인명피해가 커지면서 미국 내 팔레스타인 등 아랍계 유권자들 사이에서 여당인 민주당 인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네타냐후가 이스라엘 총리가 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바이든은 이런 네타냐후를 향한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이스라엘을 더 많이 도운 미국 행정부는 없다”고 단언한 뒤 ‘아무도 없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넌’(None)이란 단어를 세 차례 연속 내뱉었다. 이어 “나는 네타냐후가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는 11월5일 실시될 미 대선에선 이스라엘 문제가 주된 이슈 가운데 하나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반(反)유대인·반이스라엘 성향의 정치인이라고 맹비난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미국 사회 일각의 반유대주의를 일소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도 강화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물론 해리스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해리스 입장에서 볼 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 내 팔레스타인 등 아랍계 유권자의 이탈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을 더 지지해 온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가자 지구 휴전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이 늘어나자 현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네타냐후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을 멈추면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업적으로 인정돼 대선에서 커다란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그게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해리스보다는 트럼프를 더 선호하는 네타냐후가 미 대선을 앞두고 교묘한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네타냐후가 미 대선 판도를 흔들려는 것 아니냐’는 바이든의 의심에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