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에 육박한 지난여름 역대급 폭염 여파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등에 소비자와 소상공인, 식품 제조기업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매일 농산물을 사야 하는 소상공인은 한 포기에 2만원에 달하는 ‘금(金)배추’ 가격에 허리가 휘고 있고, 연 단위로 배추를 계약하는 김치 제조사는 매출이 올라 표정을 관리해야 할 판이다.
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4일 기준 배추 1포기의 가격은 8848원으로 1년 전보다 27.55% 올랐다. 열무 가격은 1㎏ 기준 4873원으로 같은 기간 34.28% 올랐다. 김치와 파김치 등에 들어가는 쪽파(1㎏)는 1만1594원으로 전년 대비 14.31%, 무(1개)는 3741원으로 45.73% 상승했다. 깻잎 가격도 100g당 3757원으로 전년(3167원)보다 18.63% 뛰었다.
이는 폭염이 장기화하며 가을철 배추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랭지 배추를 비롯한 전반적인 채소류 작황이 부진한 탓이다. 또한 이러한 채소값 폭등은 불경기로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을 직격하고 있다.
서울 종로3가에서 15년째 보쌈가게를 운영 중이라는 이모(70)씨는 “공공요금, 인건비에 농산물까지 안 오른 게 없어 요새 코로나19 거리두기 때만큼 힘들다”면서 “보쌈의 절반 이상이 김치 맛인데 배추값이 비싸다고 하품(下品)이나 중국산을 사용할 수는 없지 않냐”고 하소연했다.
이날 손님이 있어야 할 홀 한쪽 구석에는 배추 세 포기씩 담긴 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구매한 배추 가격은 한 망에 4만5000원. 평소보다 3배가량 비싼 값이라고 했다.
오른 것은 이뿐이 아니다. 보쌈김치와 밑반찬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무, 깻잎, 상추 안 오른 농산물이 없다. 이씨는 “한 박스에 1만2000원이던 깻잎이 최근에는 6만원으로 껑충 뛰었다”며 “며칠 전부터 깻잎 서빙을 중단했다”고 했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수입 중인 중국산 배추는 큰 도움이 안 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배추값 폭등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지난달 말 중국산 배추 16t을 들여온 데 이어 이번 주까지 모두 100t을 수입하고 앞으로 매주 200t씩 다음 달까지 모두 1100t을 들여올 계획이다. 민간수입업자를 통해서도 중국 배추 3000t이 더 들어온다.
하지만 소상공인이나 소비자 모두가 중국산 배추를 외면한다는 게 문제다.
중국산 배추의 수요처는 외식업체, 식자재업체, 김치 수출업체 등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해장국 집을 운영하는 A씨는 “가뜩이나 중국산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안 좋은데 지난번 ‘알몸배추’, ‘담배배추’ 같은 사건들이 터지면서 중국산은 절대 취급하지 않는다”며 “배달 전문이면 모를까 우리 같이 홀 장사를 하면 원산지 표시가 쉽게 눈에 띄니까 비싸도 국산을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주부 이모(73)씨는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 중에 누가 중국산 식품을 사고 싶어하냐”며 “나도 이번에 김장은 포기했고 그냥 포장 김치를 사 먹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 같은 이들이 늘면서 포장 김치 생산 기업은 실적이 고공행진 중이다. 일부 기업의 온라인몰에서는 포장 김치 품절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농가와 연 단위로 농산물 매입 계약을 해 시세 영향에서 자유로운 이들 기업은 신선식품값이 폭등해도 원재료비 증가 리스크가 없다. 실제 CJ제일제당의 비비고 김치 매출액은 지난 8월 전년 대비 12% 올랐고, 지난달에는 14% 증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해당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대상 종가 김치는 8월 전체 김치 매출이 1년 전보다 14% 늘어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