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KT는 사이드암 선발투수 고영표에게 계약 기간 5년 총액 107억원(보장금액 95억원+옵션 12억원)의 대형 계약을 안겼다. KT 구단 역사상 첫 비자유계약선수(비FA) 다년계약이었다.
KT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2018년까지는 평범한 투수였던 고영표는 군 제대 후 복귀한 2021년부터 KT를 넘어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발투수로 거듭났다. 직구 구속은 시속 130㎞ 중반대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고영표는 리그 최강의 마구로 꼽히는 체인지업으로 좌타자, 우타자 가리지 않고 잡아냈다. 2021년 11승6패 평균자책점 2.92로 생애 첫 두 자릿수 승수에 성공한 고영표는 2022년 13승8패 3.26, 2023년 12승7패 2.78을 기록했다. 3년 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20회 이상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선발이 고영표였다.
몸값이 수직상승하며 ‘귀하신 몸’이 된 첫 시즌인 2024년은 고영표에게 부상과 부진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올 시즌 18경기에 등판해 6승8패 평균자책점은 4.95에 그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기인 가을에 고영표의 체인지업이 춤을 추고 있다. 가을 들어 자신의 클래스를 완전히 회복하며 왜 KT가 그리 큰 금액을 안겼는지 몸소 증명해내고 있다.
고영표는 5위 수성 여부가 달렸던 지난달 28일 키움전에서 불펜으로 등판해 5이닝 1실점의 역투를 선보였다. 이틀 쉰 뒤 지난 1일 열린 SSG와의 5·6위 결정전에서도 불펜으로 나서 1.2이닝 1실점으로 KT의 승리에 힘을 보탠 고영표는 하루 쉰 뒤 지난 3일 열린 두산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에서 또다시 불펜으로 마운드에 올라 1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로 사상 첫 정규리그 5위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업셋’을 이끌었다.
고영표의 팔은 쉬지 않았다. 하루 휴식을 취한 뒤 5일 열린 LG와의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에선 선발 등판에 나섰다. 일주일 새에 4경기나 등판하는 강행군 속에 지칠 법도 했지만, 고영표는 씩씩하게 마운드에 올라 4이닝 3피안타 1실점의 역투로 KT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역대 5전3승제로 치러진 15번의 준PO에선 1차전 승리팀이 PO에 오른 것은 11번으로, 그 확률은 73.3%에 이른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는 고영표의 전천후 등판 덕에 이강철 감독의 투수진 운영은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