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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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해리스, 농촌 트럼프… 근교 표심은 팽팽 [뉴스 투데이]

美 대선 D-30…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 가보니

노샘프턴·뉴타운, 트럼프 지지↑
“국경 안전·인플레 문제 등서 우세”

민주당 지지자 많은 필라델피아
“이민자 위한 정책 펴줄 거라 기대”

“펜실베이니아 사람들은 지금 매우 신나(enthusiastic) 있어요. 우리가 미국의 대통령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11월 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 대선을 한달 가량 앞둔 지난달 28일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근교 벅스카운티 뉴타운의 뉴타운스포츠앤드이벤트센터에서 열린 공화당 부통령 후보 J D 밴스의 유세장 뒤편에서 만난 백인 남성 데이비드(46)는 밴스가 어떻게 말하는지 한번 보러 왔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차로 약 35분 걸리는 뉴타운에 살며 인근 뉴저지주로 출퇴근하는 그는 유가에 민감한 대표적인 ‘근교 유권자’다. 과거 민주당에 투표한 적도 있으며 현재는 누구를 찍을지 지켜보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의 필라델피아 근교 지역 뉴타운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 J 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의 유세가 열리는 가운데 공화당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홍주형 기자

7개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을 갖고 있으며,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모두 꼭 이겨야 대선에서 승리하는 주로 꼽히는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펜실베이니아엔 미국의 지역을 구분하는 도시(urban)·근교(suburban)·농촌(rural) 표심이 섞여 있다. 이 중 어느 표심이 조금 더 크게 작용하느냐가 미 대선의 운명을 가를 것이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금융·교육의 중심지 필라델피아, 35분 거리 근교 뉴타운, 1시간30분 거리의 쇠락한 옛 산업도시 노샘프턴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각의 표심을 대표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재난현장 찾은 해리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가운데)이 5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항공방위군 기지에서 군인들에게 허리케인 헐린 복구 작업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샬럿=AFP연합뉴스

필라델피아 북부 인구 30만명의 노샘프턴카운티는 2016년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해 대선의 ‘풍향계’(bellweather)라는 별명을 얻은 곳이다. 허리케인 ‘헐린’이 미 남동부를 강타한 29일 오후 찾은 노샘프턴엔 비가 흩뿌려서인지 인적도 드물었다. 주유기가 달랑 한 개 있는 주유소가 딸린 동네 슈퍼 ‘터키 힐 미닛 마켓’ 앞에서 백인 남성 에릭(60·가명)을 만났다. 인근 베들레헴에서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 그는 “일하는 곳에 가면 대부분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하고, 가끔 드물게 해리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매우 보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이탈리안마켓에 위치한 라틴계 상점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팻말이 걸려 있다. 이 지역의 라틴계 이민자들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조직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홍주형 기자

슈퍼에 물건을 사러 온 백인 남성 제임스(57)는 인근 뉴욕주에서 매니지먼트 회사에 다니다 11년 전 노샘프턴에 정착했다. 그는 “나는 젊은 시절 오랜 기간 민주당 지지자였으나 최근 트럼프를 뽑기 시작했다”며 “경제를 생각하면 비즈니스맨인 트럼프를 찍어야 할 것 같지만 아직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해리스가 푸틴 같은 ‘스트롱맨’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경합지역 펜실베이니아 노샘프턴의 한 주택에 해리스·월즈 지지 깃발이 걸려 있다. 홍주형 기자

거리에선 해리스 지지자를 만날 수 없어 ‘해리스·월즈’ 팻말을 걸어놓은 집의 벨을 눌렀다. 노샘프턴에 40년을 살았다는 백인 여성 미리아(60)가 나왔다. 보험회사의 정보기술(IT) 담당자로 재택근무를 하는 그는 “나는 젊은 시절 로널드 레이건에 투표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해리스를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자기 말만 하고, 해리스는 ‘우리’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찾은 경합주 중 경합 지역 펜실베이니아 노샘프턴의 옛 양말공장. 도시에 공장이 하나둘씩 떠난 뒤 현재는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홍주형 기자

그는 집 앞 낡은 아파트가 사실은 양말 공장이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과거 양말 공장, 군복 공장 등이 현재는 모두 떠났으며 산업이 사라진 도시는 점점 휑해지고, 주머니가 비자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만 그는 “우리 민주당원들은 좀 더 조용할 뿐”이라며 여전히 노샘프턴에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28일 밴스의 유세가 열린 벅스카운티 뉴타운은 필라델피아에서 35분 거리로 인구 63만명인 필라델피아의 근교 지역이다. 비가 계속 내렸지만 유세가 예정된 오후 5시보다 3시간 이른 오후 2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색인종이 섞인 민주당 집회장과는 다르게 이날 유세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었고, 드물게 아시아계나 흑인이 있었다. 사람들은 빌리지피플의 ‘마초 맨’, ‘YMCA’에 맞춰 흥겹게 춤을 췄다.

 

피격현장 다시 찾은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이 5일(현지시간) 지난 7월13일 유세 중 총격을 당한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의 같은 유세 장소를 찾아 방탄막 뒤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지지 연설을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버틀러=AP연합뉴스

16년간 공화당 자원봉사자로 일한 백인 여성 오드리(59)는 인터뷰 요청에 “매체가 어디냐”부터 물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의 주류 언론이 아닌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의 주류 언론이 편향돼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여론조사도 믿지 않는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는 “우리의 디너 테이블 메뉴를 바꿔줄 수 있는 사람이 트럼프”고 말했다. 치과의사 남편과 함께 유세장에 온 교사 출신 린다(63)도 “우리는 늘 트럼프를 뽑아왔으며, 트럼프가 국경 안전, 인플레이션, 낙태, 그 모든 문제에서 해리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교정.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졸업한 경영대인 와튼스쿨 앞으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 지역의 학생들은 주로 민주당 지지층이다. 홍주형 기자

29일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유펜), 드렉설대학교 등이 위치한 필라델피아 서쪽 대학가 ‘유니버시티 시티’의 클라크 공원에서는 젊은 민주당원들이 ‘캔버싱’(canvassing)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캔버싱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 홍보다.

 

이들의 활동을 보러 나온 캐럴 젠킨스 템플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기자를 만나 이 지역이 속한 제27워드(Ward·한국의 동 개념)는 아이비리그의 일원인 유펜이나 드렉설대 학생들, 학교 주변 고급 주택가에 사는 교직원들, 다소 저렴한 지역에 사는 흑인 집단으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민주당에 헌신적인 집단이다. 젠킨스 교수는 교직원 집단에 대해 “그들은 거의 대부분 민주당에 등록돼 있으며, 민주당이 옹호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거의 모든 선거에 참여하는 ‘슈퍼 유권자’”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교정에서 투표 독려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홍주형 기자

30일 유펜 교정에서 만난 학생들도 예상할 수 있듯 민주당을 옹호하는 답변을 내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졸업한 유펜 경영대 와튼스쿨에서 만난 켄터키주 출신 경제학과 백인 여학생 댈런(21)은 “나는 해리스의 경제정책에서는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여성의 권리 측면에서는 완벽하게 그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교정에선 특정 정치 그룹을 지지하는 팻말은 붙어있지 않았지만 시민단체의 투표 참여 독려 운동은 계속 열리고 있었다.

 

필라델피아 중심부에 위치한 이탈리안마켓으로 옮겨봤다. 현재는 약간의 이탈리아계 상점 외엔 라틴계 상점으로 빼곡했다. ‘해리스를 위한 라티노들’ 팻말을 걸고 있는 잡화점 주인 알레한드로(52)는 “이 구역에만 800여명의 라틴계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며 “이 지역의 라틴계 이민자들은 해리스를 지지하고, 해리스가 라틴계 이민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젠킨스 교수는 “미국의 정치 지형은 현재 도시는 민주당 우세, 농촌은 공화당 우세, 근교는 경합으로 나뉘고 필라델피아에서 멀어질수록 공화당 우세”라고 설명했다.


필라델피아·뉴타운·노샘프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