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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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찾지 않고 해외입양 추진”…44년만 딸 찾은 母 ‘국가배상’ 소송

1976년 미국으로 입양된 당시 경하씨(당시 7살·왼쪽)와 44년 뒤인 2019년 어머니 한태순씨와 상봉한 모습. MBC ‘실화탐사대’ 방송 갈무리

 

44년 전에 잃어버린 딸이 미국으로 입양된 것을 확인한 부모가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국가가 해외 입양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미아로 고아로 둔갑시켰다는 것.

 

실종아동 부모 한태순씨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실종아동의 불법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씨는 “실종 가족들은 아이를 찾다 병들고 재산을 탕진하고 비극적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고 있다”며 “천인공노할 (입양) 비즈니스를 묵과한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실종 부모들 앞에 백배사죄하라”고 주장했다.

 

 

충주서 없어진 6살 딸…미아로 제천경찰서 갔지만 두달 뒤 ‘고아’로 둔갑

 

한씨 부부는 1975년 5월 충북 청주에 거주할 때 6살이었던 딸 경하씨를 잃어버렸다. 한씨가 잠시 장을 보러 나간 사이 한 여성을 따라가 기차를 탔던 경하씨. 제천역앞 파출소로 보내진 그는 이후 고아원으로 옮겨졌다.

 

실종 2개월 만에 미아가 아닌 고아가 된 것이다. 입양기관에 인계된 경하씨는 7개월 만인 다음 해 2월 미국으로 입양됐다. 그러는 동안 한씨는 애타게 딸을 찾고 있었다. 딸이 미국으로 입양됐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MBC ‘실화탐사대’ 방송 갈무리

 

한씨가 딸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무려 44년이 지난 2019년 10월. DNA 정보를 통해 가족 찾기를 지원하는 단체 ‘325캄라’를 통해 딸을 만나게 됐다.

 

딸을 만나 평생의 한을 풀었지만, 경하씨가 해외입양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당시 한씨는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신고했고, 아이는 미아로 발견돼 관할 지역 경찰서에 있었는데도 전혀 소식을 접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당시 해외 입양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미아의 부모를 찾아주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가 때문이라고 대리인단은 설명했다.

 

 

“부모 찾는 노력 없이 입양수수료 받고 신속하게 해외입양…국가가 방치”

 

한씨는 “국가가 관내 경찰서 미아 발생 신고 사실, 아동보호기관의 미아 보호시설 확인 등의 절차만 제대로 이행했어도 딸을 다시 상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를 고발하기로 한 한씨는 “원가정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보다 입양수수료를 받고 신속하게 해외입양을 추진했던 상황에서 국가의 아동보호 책임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소장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실종 아동의 불법 입양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소송 기자회견에서 한태순 씨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울러 그는 “고통으로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 분하다”며 “딸을 찾아 만난 기쁨도 잠시이고, 지금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는 “영아원 등 아동보호시설 역시 불법적으로 해외입양된 것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보호자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할 의무를 저버리고 미아에 대한 성급한 해외입양을 알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배상소송을 최초로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입양된 과정에서 국가 등의 잘못을 철저히 규명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 입양자는 16만9292명이다. 그리고 1966년 고아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4개 입양알선기관만이 정부 허가를 받아 해외입양 알선 업무를 전담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해외입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건 신청은 총 375건에 이른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