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네가 못 찾은 거 아냐?”
알파벳 과자도 있는데, 한글과자가 없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대한 외국인’ 두 명이 있었다. ‘미국 사람’ 타일러 라쉬(36)와 ‘인도 사람’ 니디 아그라왈(30)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한 이 둘은 지난해 한글날(10월9일) 수제로 만든 ‘한글과자’를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한글과자 출시 1주년인 올해 제578돌 한글날을 앞두고 지난 3일 서울 종로 주시경마당에서 타일러와 니디를 만났다. 주시경(1876∼1914) 선생과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 동상이 세워진 이 장소를 제안한 것도 그들이었다. “제가 헐버트 박사님이 태어나신 버몬트주 출신이기도 하고, 한글날에 제일 잘 어울리는 장소 아닌가요?” 헐버트 박사의 동상 옆에 선 타일러가 ‘푸른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1886년 조선 최초 근대식 공립학교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 땅에 발을 디딘 헐버트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로 쓰인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에는 고종황제의 특사로 미국과 네덜란드 등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한글의 우수성에 매료돼 이를 세계에 널리 알렸던 헐버트 박사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대로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잠들어있다.
헐버트 박사가 최초의 한글 교과서를 집필했다면, 타일러는 니디와 함께 최초의 한글과자를 만들었다. 과자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다. “과자를 이용해서 초성게임도 하고, 한글을 가지고 재밌게 놀 수 있잖아요.”(타일러) 배우기 어려운 한국어를, 즐거운 놀이 수단으로 만들 생각에 둘은 불타올랐다. 직접 베이킹을 배워 출시 전까지 한 달가량 하루에 14∼18시간씩 직접 수제로 과자를 만들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고 싶다며 대량 주문 문의가 밀려들었다. 해외 수요도 만만치 않다. 니디는 “지난 6월에 국제식품박람회를 나갔는데, 한글과자를 수입하고 싶어하는 국가가 50개가 넘었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식품기업과 손잡고 올해부터 대량생산을 시작, 지난달 제품을 공식 론칭했다. 타일러는 “한글과자는 외국인들이 직접 사가거나 외국인에게 선물할 수 있는 기념품으로도 안성맞춤”이라며 “면세점 입점과 해외 유통까지 목표로 하고 공장과 계약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선구자의 길’이기에 더욱 험난했다고 타일러는 털어놨다. “법원 등기소에서 법인 등록을 할 때는 제 이름을 무조건 한글로 써야 하는데, 세무서에서 사업자 등록을 할 때는 또 영어로 쓰는 게 원칙이더라고요. 나중에 택배사랑 계약하려 하니 서류상으로 등기랑 사업자 등록증 이름이 다르다고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 법인 대표가 외국인인 경우가 정말 드물어서 아직 개선되지 않은 허점이더라고요.”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도, 타일러와 니디는 ‘한글과자는 꼭 세상에 존재해야 해’라는 일념 하나로 사업을 추진했다. 외국인인 이들에게 그러한 확신을 준 한국어는 도대체 어떠한 매력을 가진 언어일까.
타일러는 “한국어는 은유적이고, 함축적 의미가 정말 풍부한 언어라고 생각한다”며 “제일 신기했던 표현 중 하나가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인데, 이 다섯 글자에 ‘내가 지금 너무 힘들다’는 극한의 심리 상황뿐 아니라 ‘주변 신경 쓸 여유가 하나도 없는 지금 그건 나한테 중요한 일이 아니야’라는 의미까지 담겨 있는 게 놀라웠다”고 답했다.
니디는 “한국어는 힌디어에 비하면 ‘돌려 말하는’ 표현이 많은 언어”라며 “한국어를 배우면서, 그 속에 녹아 있는 겸손함, 공손함까지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어의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타일러와 니디는 최근 전 세계에서 불고 있는 한국어 학습 열풍을 반기며 ‘후배’들을 위한 조언 아닌 조언(?)까지 남겼다. “생각을 한국어로 하기, 입으로 최대한 많이 내뱉기…. 다 중요한데요, 무엇보다 한국어는 정말 어려운 언어라서요. 한국어 공부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웃음). 한글과자로 즐겁게 공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