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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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칼럼] 자살, 우리 사회가 만든 중병이다

2023년 자살률 9년 만에 최고치
무한 경쟁 속 아픔과 좌절 반영
마음의 병도 얼마든지 치료 가능
따뜻한 한마디가 누군가를 구해

얼마 전 우리 아파트 근처에서 중학생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였다고 한다. 부모 이혼으로 조손가정에서 자랐던 모양이다. 워낙 다들 쉬쉬하는지라 알려진 사연은 많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고교생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겨울방학 때 킥보드 사고로 중상을 입은 학생이었다. 입원 탓에 개학은 고사하고 1학기가 거의 뒤처졌다. 학업 공백도 공백이지만 이미 공고하게 형성된 또래 모임에 끼지 못하는 상황이 그를 좌절하게 한 것 같다.

어린 학생들이 스러지고 있다. 안타까운 죽음이다. 뉴스와 통계로만 알던 현실을 주변 소식으로 들으니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지난해 자살률이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만397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전년보다 8.3%(1072명)나 늘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자살률)는 27.3명으로, 2014년 이후 가장 높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연간 1만3978명이면 하루 38명 꼴이다. 2시간에 3명이 자살하는 현실이 믿어지는가. 하루 평균 7.5명인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교해 봐도 깜짝 놀랄 일이다. 2022년 한 해 교통사고로 2735명이 사망했다.

이쯤이면 우리 사회가 중병에 걸려도 한참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다. 60대(13.6%)와 50대(12.1%), 10대(10.4%)의 자살 증가율이 유독 높다. 장년층과 10대 청소년의 마음 건강이 위험수위라는 뜻이다.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을 장년층, 입시지옥의 무한 경쟁에 지친 10대의 아픔과 좌절이 숫자를 끌어올렸을 것이다.

무한 경쟁에 지친 이들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우리의 생존 경쟁이야 세계적이지 않은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서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아등바등했던가. 그 덕에 K컬처를 세계로 뿌리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설 수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 3000달러, 3만달러의 세대가 동시대에 공존한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이제는 서로를 보살피고 돌볼 여유를 가질 때도 됐다. 전문가들은 자살이 마음의 병을 돌보지 않아 빚어진 현상이라고 말한다. 병을 제때 치료하면 건강을 되찾듯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제때 다스리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에선 병원에 일반 응급실과 별도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정신과 응급실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찾아갈 곳은 마포대교가 아니었다. ‘자살 예방의 날’을 이틀 앞두고 현장 관계자들을 격려하려는 취지를 모르지는 않는다. 마음이 아픈 이들을 상담하는 109콜센터 직원들을 찾아 격려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사진 구도를 잡기에는 콜센터보다 마포대교가 극적이기는 하다. 그래도 센터를 찾았더라면 지난해 9월 마음 건강 대화 참석자를 격려하고 지난 6월 ‘회복과 위로를 위한 대화’에 참석한 김 여사의 진정성을 누가 의심했겠는가.

자살 예방을 위해 나선 전문가들이 있다.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와 장동선 한양대 창의융합원 교수가 대표적이다. 유튜브에서 ‘자살’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두 교수의 동영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 교수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것을 반대한다. 사회적 책임이 있는 죽음을 개인적 선택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용어는 언론에서 점차 퇴출되어 가고 있다. 장 교수도 자살에 대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위기”라고 말한다.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다. 태어나고서도 제대로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치는데 먼 훗날 얘기가 제대로 들릴 리 없다. 자살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중병이다. 사회가, 정부가 나서 책임감을 느끼고 예방을 위한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일본과 핀란드에서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10일은 ‘정신건강의 날’이다. “자살 생각은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든다”는 나 교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얘기할까요?” 이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구할지 모른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