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사태 이후 부패 방지와 국민 신뢰 제고를 위해 도입한 경찰청의 ‘시민청문관’ 제도가 정원 미달 등으로 인해 유명무실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청문관은 버닝썬 사태와 각종 유착 비리로 떨어진 국민적 신뢰 제고를 목표로 경찰청 내에 민간 청렴 전문가를 등용하기 위해 2020년 처음 도입됐다. 당시 본청과 각 지방청, 경찰서별로 1명씩 총 274명이 6~8급 임기제공무원으로 채용돼 2년의 임기 동안 부패 취약요소 진단과 개선, 부패행위 조사와 같은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 시민청문관 정원은 최초 도입 당시인 2020년과 2021년 274명에서 2022년 169명, 2023년 76명으로 갈수록 감소됐다.
실제로 선발된 인원마저도 정원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직위는 2020년 정원의 26.6%인 73명, 2021년 정원의 35.0%인 96명을 선발하는데 그쳤다. 2022년에는 정원을 시도청과 1급서 기준 169명으로 감축했음에도 정원의 56.8%인 96명만 선발했고, 2023년에는 정원을 76명으로 절반 넘게 축소했지만 62명을 충원하는 등 여전히 결원이 발생하고 있다.
시민청문관 정원 축소와 결원이 계속되는 동안 경찰청 내부 비위는 더 늘어났다. 내부 비리 신고는 2019년 52건에서 2023년 145건으로 급증했는데, 이 기간 제기된 신고 480건 중 348건(72.5%)은 불문 종결로 끝났다.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신고 또한 2019년 36건에서 2023년 60건으로 증가했으나, 전체 274건 중 징계는 36건(13.1%)에 불과했다.
경찰청은 “시민청문관 정원이 줄어든 것은 경찰서가 아닌 시도경찰청에서 집중 관리하는 쪽으로 제도 성격이 바뀐 데 따른 현상”이라며 “내부 비리 신고 증가도 비위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신고센터가 활성화된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시민청문관은 운영에 대한 근거 법령과 매뉴얼, 세부 지침이 각 경찰서별로 달라 경찰 내부 감사나 민원 조사보다는 행정 보조나 대리 신고 등 단순 사무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경찰청 관계자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관이 경찰관 비리를 경찰한테 직접 신고하는 게 아무래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외부인인 시민청문관에게 신고하거나 시민청문관이 가명으로 대리 신고해줄 수 있도록 하는 등 내부 비리 신고를 접수하는 창구로서의 역할만 맡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외부인이 참여해 조직 내부의 비리를 조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제도 활성화를 위한 경찰청의 지속적인 의지와 근본적인 부패 방지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제도는 국민들이 그 기관을 신뢰하지 못할 때 신뢰 회복 차원에서 도입하는 일종의 극약처방 같은 것”이라며 “경찰 스스로 내부 직원들의 법 집행 시 부정행위나 문제를 잘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제도를 추진하느냐에 따라 제도가 활성화될 수도 있고 답보 상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병도 의원은 “시민청문관 제도 운영 부실을 보면 과연 경찰청이 내부 비리 척결과 부패 방지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제라도 경찰청은 강도 높은 부패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