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옛 식민 지배국이었던 프랑스와의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시켰다. 이는 동맹국이 없는 베트남이 외국과 맺은 최고 수준의 친선 관계에 해당한다. 급변하는 인도태평양 지역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과거사 트라우마를 완전히 내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를 방문 중인 토람(To Lam) 베트남 국가주석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양국 정상은 안보 및 국방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다짐했다. 아울러 항공우주, 인공지능(AI), 공항 등 교통 인프라와 같은 새로운 분야에서의 공조도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어 온 나라는 미국, 중국, 인도, 한국, 일본, 러시아, 호주 7개국이었다. 여기에 8번째 국가로 프랑스가 추가된 셈이다.
베트남이 유럽 국가, 특히 유럽연합(EU) 회원국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가 된 것은 프랑스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향후 EU로의 진출에 필요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지정학은 물론 경제에 있어서도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파트너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크다. 로이터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연결 고리로서 베트남의 전략적 역할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오랫동안 베트남이 추진해 온 이른바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의 성공으로도 평가된다. 대나무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나라의 자주성은 굳게 유지하되 경제, 안보 같은 실리를 위해서는 융통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베트남 특유의 외교 전략을 대나무 외교라고 부른다. 베트남이 미국, 중국, 러시아 중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으면서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배경에 바로 대나무 외교의 정신이 있다.
베트남이 프랑스와 최고 수준의 외교 관계를 형성한 것은 실리를 위해 과거사의 앙금을 털어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독립 왕국으로 존속하다가 제국주의가 극성을 부린 19세기 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인도 지배권을 두고 영국과 다퉜다가 패한 프랑스는 인도 동쪽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활로를 찾다가 1858년 베트남을 침략한 것을 시작으로 1883년에는 베트남 전체를 보호국으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하면서 독일의 동맹인 제국주의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하고 1945년까지 지배했으나, 일본이 패망한 이후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장악했다.
1945년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 저항 세력은 프랑스에 맞서 끈질기게 싸웠다. 1954년 5월 베트남 북부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과 베트남 저항군 간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져 베트남이 승리했다. 이후 프랑스는 식민통치를 포기한 채 철수하고 베트남은 자유주의자들이 우세한 남부 월남과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북부 월맹으로 분단됐다. 월남은 프랑스 대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버티다가 1975년 결국 월맹에 흡수되며 베트남 통일이 이뤄졌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오랫동안 프랑스 치욕의 역사로 간주되며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다. 하지만 올해 전투 70주년을 맞아 프랑스 정부 대표단이 사상 처음으로 베트남 측 승전 기념식에 참석하며 양국이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두 나라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시킨 것도 과거사를 둘러싼 화해의 결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