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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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년 희망퇴직금 6조5000억, 서민 고통 외면한 은행 ‘돈 잔치’

은행들이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폭리로 ‘돈 잔치’를 벌였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이 낸 국감 자료에 따르면 국내 14개 은행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희망퇴직자들에게 6조5422억원을 희망퇴직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1만6236명의 퇴직자가 1인당 평균 4억원에 달하는 목돈을 챙긴 셈이다. 희망퇴직금은 법정 퇴직금 외의 돈으로 자녀학자금, 재취업지원금이 포함됐고, 일부 은행은 건강검진비와 의료비, 상품권까지 지원했다고 한다. 한국씨티은행은 2021년 은행 중 가장 많은 1인당 6억원을 지급했고, 일부는 7억7000만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은행 종노릇’, ‘약탈적 금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내 4대 금융지주(KB·신한·우리·하나)의 3분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4조4423억원) 대비 8% 증가한 4조7977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금융가의 관측이다. 주요 은행들은 7~8월 20여차례 금리를 올렸다. 금융당국이 “손쉬운 방법”이라고 비판하자 마지못해 은행권은 유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중단하고 한도를 줄이는 총량 제한에 나섰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지난달 시중은행의 주담대 신규 취급액이 크게 줄지 않자 은행권은 이달 들어서 금리를 속속 올리고 있다. 당국의 비판이 무색해질 정도다.

국내 은행이 이자수익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금리 상승기에 예금금리는 천천히 올리는 대신 대출금리는 급격히 올려 손쉽게 돈을 벌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대 은행의 전체 이익 중 이자수익 비중은 90%를 훌쩍 넘는다. 글로벌 100대 은행의 이자이익 비중이 6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1.5배가량 더 높다. 일부 지방은행은 이자이익 비중이 94∼99%에 달한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은행은 일반 사기업과 다르다.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민 혈세로 은행을 살려낸 만큼 공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자수익은 금리 등 시장 상황에 따른 변화 폭이 크다. 언제까지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한가하게 성과급·퇴직금 잔치를 벌일 것인가. 금융 혁신과 선진 시스템 도입을 통해 비이자 수익을 늘리는 등 수익구조 다변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원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소상공인과 가계의 고통 완화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서민금융 상품을 확대하는 등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