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9일 “자유 통일 한반도가 실현된다면, 한반도는 물론 인태(인도태평양) 지역과 국제사회의 평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은 이날 현지 오차드호텔에서 열린 ‘제47회 싱가포르 렉처’에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을 위한 한반도 통일 비전’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북한의 핵 위협이 사라지고, 국제 비확산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역내 국가·지역 간 평화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대폭 활성화될 것”이라며 “인태 지역의 경제 발전과 번영에도 강력한 추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방된 한반도를 연결고리로 태평양·한반도·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시장이 열릴 것”이라며 “에너지, 물류, 교통, 인프라, 관광에 걸친 활발한 투자와 협력의 수요가 분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자유롭고 열린 통일 한반도가 실현된다면, 자유의 가치를 크게 확장하는 역사적 쾌거가 될 것”이라며 “가난과 폭정에 고통받는 2600만명의 북한 주민들에게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자유를 선사하는 축복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설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싱가포르 정부 산하 동남아연구소(ISEAS) 선임 연구원의 ‘8·15 통일 독트린을 북한이 위협으로 느끼지 않나’라는 질문에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위협은 전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통일 원칙과 비전은 자유·평화 통일이다. 무력과 물리력에 의한 강제적인 통일은 저희 헌법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또 “북한은 현재 대화와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고, 오로지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에만 매달려 집착하고 전체주의적 권력유지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바로 내일 통일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지만 저희가 준비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행동을 꾸준히 실천해야 어떤 상황이나 기회가 왔을 때 국제사회에 도움되는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싱가포르공무원대 선임 연구원이 ‘미·중 갈등·경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의 대외정책’에 관해 묻자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대한민국 외교와 대외정책의 근간”이라며 “중국과의 관계는 상호 존중과 국제 규범과 원칙에 입각한 공동의 이익 추구라는 차원에서 만들어가고 있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8·15 통일 독트린 발표 후 해외에서 진행한 첫 한반도 문제 관련 언급이다. ISEAS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테오 치 힌 선임장관, 찬 헹 치 ISEAS 이사장 등 싱가포르 각계 인사, 외교단, 교민과 유학생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싱가포르 일정을 마무리하고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이동한 윤 대통령은 10일부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라오스에서는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이 연달아 개최된다. 회의가 이어지는 10, 11일 이틀간 윤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과 양자회담도 진행한다.
11일 열리는 EAS에서 윤 대통령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 등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블링컨 장관은 EAS와 미국·아세안 정상회의 등에 참석해 미국과 아세안 간의 협력에 대해 논의하고 지정학적 현안들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이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전날 브리핑에서 “긴급한 지정학적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진행 중인 미얀마 위기, 남중국해에서의 국제법 수호 중요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와 첫 회담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2일 이시바 총리와 전화 통화를 통해 조속히 만나자는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한·중, 중·일 양자회담 성사 여부도 관심사다. 한·중 회담을 진행하게 될 경우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 이후 4개월여 만에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