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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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개헌 미공개 왜?… 美 대선 겨냥 시기 저울질 가능성

전문가 해석 분분

적대적 두 국가론 반영 불투명
최고인민회의, 헌법 일부 수정 보충
공민의 노동 가능·선거 연령 수정안
노광철 국방상 재기용 사실 등 밝혀

개헌 완료 뒤 비공개 가능성
개헌안 수개월 뒤 상세 공개 전례
북 접경지 군사적 조치 선언 감안
북한군 후속조치 착수 해석도 나와

영토 조항 개헌 없었을 수도
지시했던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불참
관련 보도 없는 것이 미개정 뒷받침
북 내부 설득력 확보 등 과정 밟는듯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했으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사항인 두 국가론을 반영한 영토조항 신설·통일과 민족 관련 단어 삭제 등의 개헌을 했는지 여부와 내용 등에 대해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가 7, 8일 이틀간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됐다고 9일 보도했다. 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에 상정된 의안은 헌법 수정·보충, 조직문제와 민생 관련 법안 등 5개였다고 밝혔다.

북한이 9일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를 이날부터 완전히 끊고, ‘남쪽국경’을 차단·봉쇄하는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오두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에서는 북한 군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파주=연합뉴스

◆‘적대적 두 국가’ 반영 개정 불투명

 

헌법 수정 안건에서 두 국가 관련한 내용 없이 공민(국민)의 노동 가능 연령과 선거 연령을 수정했다는 내용만 나왔다. 또 회의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인 김덕훈 내각총리,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당과 정부, 군부, 각 기관의 일꾼들이 참가했다고 보도됐다. 김 위원장과 김여정 당 부부장은 불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자신의 선언을 헌법에 반영하자는 내용의 시정연설을 한 바 있다. 그러면서 다음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영토조항을 추가하고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 표현과 같은 민족·통일 관련 단어를 삭제하는 등의 개정안을 심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빠진 뒤 이번까지 개최된 11차례의 최고인민회의에 총 5차례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통신연락선 복원 등의 입장을 밝혔고,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하는 등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통신은 또 조직문제 관련해 노광철 국방상이 임명됐다고 공개했다. 노광철은 2018, 2019년에도 인민무력상(현 국방상)을 지낸 바 있다. 노광철은 북·미, 남북정상회담이 가동되던 당시 김 위원장을 수행했던 인사다. 2018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거수경례로 서로 인사한 장면이 화제가 됐고,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9·19 남북군사합의에 서명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개헌 미공개” VS “개헌 없어”

 

북한이 이날 두 국가 개헌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개헌을 완료했지만 공개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도 법률 관련은 수개월이 지나서야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헌 보도는 없지만,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9일 부로 ‘남쪽 국경일대’에서 남북 단절을 위한 군사적 조치를 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점을 감안할 때 최고인민회의에서 개헌이 있었고 군이 후속조치에 착수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주권행사 영역과 10월9일 부 등 구체적인 날짜를 언급하며 군사적 조치에 나선 것으로 보아 최고인민회의 헌법 개정 영토조항과 모종의 조치가 연결됐다고 볼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개헌이 이뤄졌다면 영토조항 중 육상 경계는 정전협정상 현 군사분계선을 인정한 가운데 한반도 북쪽을 주권행사 영역으로 규정했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개헌 자체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다음 회의에서 개헌하라는 김 위원장 지시가 보도됐을 때에도 전문가 사이에서는 북한 사회를 지금까지 끌고 온 이데올로기와 그 이념을 반영한 헌법을 개정하는 작업은 헌법 구조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양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지시했던 사항에 대해 직접 참여해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합리적 해석일 텐데, 김 위원장이 불참하고 보도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미개정을 뒷받침하는 요소”라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 법개정, 후 실행조치’가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역순으로 갈 수도 있다”며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보도문에서도 북한 지역은 ‘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으로, 남한 지역은 ‘대한민국 영토’라고 달리 표현한 것도, 개헌했다면 ‘공화국 영토’와 대한민국 영토라고 언급했을 부분”이라고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도 “북한은 현 정전협정을 부정하는 입장이므로 군사분계선을 국경으로 명시하기 어렵고, 남북이 병존하는 두 국가라면서 우리 헌법처럼 한반도 전체를 북한 영토로 정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의도처럼 개헌이 간단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봤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사안이고,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을 고려해 상황을 보려는 것일 수도 있다. 대미협상 경험자인 노광철 국방상 재기용도 미 대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 주민에 대한 내부 설득력을 확보하고 대내외 여파를 줄여가며 헌법 개정으로 수렴하려는 수순일 수 있다”고 했다. 양 교수는 “미 대선을 앞두고 핵시설 공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발사 가능성 등을 열어놓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 개정을 공개할 경우 이슈의 분산이 일어난다는 점 등을 고려, 공개 여부를 조절하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