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전방위 강경책으로 ‘제5차 중동전쟁’ 우려가 커지던 중동에서 휴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응을 다짐하던 이란과 레바논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미국 등과 휴전협상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가자지구와 레바논 등에 대한 대대적 공습과 이란에 대한 압박을 이어간 이스라엘의 강경책이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 모양새다.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미국과 아랍국가들이 중동 지역 모든 전선의 휴전을 위해 이란과 비밀회담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현재 이 회담에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고위 당국자들이 이에 대한 통보를 받았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바스 아라치 이란 외무장관이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순방에 들어갔다. 이번 순방 동안 아랍국가들과 휴전과 관련한 교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헤즈볼라도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에 살해된 뒤 강경 대응을 천명하던 입장이 변화하고 있다. 2인자인 나임 카셀 사무차장은 이날 연설에서 “나비 베리 레바논 의회 의장이 휴전이라는 명목으로 이끄는 정치활동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가자지구 휴전 없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헤즈볼라의 기존 입장이 변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휴전 협상에 여지를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기류 변화는 이스라엘과 충돌 속 중동의 확전 가능성이 최고조에 다다른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레바논과 가자지구를 몰아붙인 강경책이 이들을 한발 물러서게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란과 헤즈볼라 모두 이스라엘과의 정면 충돌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란의 경우 전면전이 발생하면 서방과 긴장 완화를 통한 제재 해제 등 당면한 경제문제 해결을 노리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개혁 정책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 이란이 미국과 휴전 관련 비밀 협상에 나선 것도 제재 해제 등과 관련한 미국과 교감을 이어가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헤즈볼라는 32년간 이끌어온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된 뒤 후계자로 지명된 하셈 사피에딘 집행위원장까지 사망하며 지휘체계가 크게 흔들려 조직 재건을 위한 시간이 절실하다. 카셈 사무차장은 이날 연설에서 “전쟁 때문에 새 사무총장 선출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기류 변화 속 한 주 새 급등세를 지속했던 국제유가도 안정세를 찾았다. 하루전 80달러선을 돌파했던 브렌트유 가격은 이날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선물 종가가 전 거래일 대비 3.75달러(-4.63%) 하락한 배럴당 77.18달러를 기록했다.
관건은 이스라엘이 이란, 헤즈볼라의 입장 변화에 호응할 것인가다. 미국 등 서방의 휴전 요구를 일축하고 지속적으로 하마스, 헤즈볼라 등과 대립해 온 이스라엘은 이란의 1일 본토 공습에 대응해서도 재보복을 공언해 왔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9일 미국을 방문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기로 해 재보복 관련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관측됐다. 다만, 이 방문이 방문 하루 전 돌연 취소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막판에 방미를 승인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재보복 여부를 두고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9일 오전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계획에 대한 중요한 전화통화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격 수위를 높이려고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자칫 전면전 촉발 등 사태를 악화할 수 있는 과도한 보복의 자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전화회담 결과에 따라 향후 휴전 국면 전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