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야생동물 개체군이 73% 급감했다는 WWF(세계자연기금) 보고서가 나왔다. 담수 생태계가 85%로 감소하고 식량시스템이 망가진 때문인데, WWF는 “앞으로 5년이 지구 모든 생명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2030 목표 달성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WWF(세계자연기금)는 10일 ‘2024년 지구생명보고서’(LPR)를 전 세계 동시 발간하고 “지난 50년 동안(1970년~2020년)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군 규모가 평균 73% 감소하는 재앙적 상황에 처했다”고 발표했다. 지구생명보고서는 WWF가 2년마다 발간하는 대표 간행물로, 올해 15번째에 해당한다.
이번 보고서는 지구가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위험한 ‘티핑 포인트’에 가까워졌음을 경고하며, 앞으로 5년간 기후와 생물다양성의 이중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지구생명지수(LPI)는 전 세계 5495종을 대표하는 약 3만5000개의 개체군을 대상으로 1970년부터 2020년까지의 추세를 분석한 결과다. 이 중 담수 생태계가 85%의 가장 큰 감소를 보였고, 육상(69%)과 해양(56%) 생태계가 그 뒤를 따랐다.
야생동물 개체군 감소의 주된 원인은 식량 시스템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황폐화로 지목됐다. 그 외에도 자원 남용, 외래종 침입, 질병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기후변화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해, 해당 지역의 지구생명지수는 평균 95% 감소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야생동물 개체군 감소는 멸종 위험 증가와 더불어 건강한 생태계의 손실 가능성을 알리는 조기 경보 신호다. 생태계가 훼손되면 깨끗한 공기, 물, 건강한 토양 등 인류가 의존하는 자연의 혜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으며, 이는 지구가 티핑 포인트에 더욱 취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티핑 포인트란 생태계가 한계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마존 열대우림의 마름 현상(Dieback)이나 산호초의 대규모 폐사 등이 해당한다.
글로벌 티핑 포인트는 해당 지역을 넘어 식량 안보와 생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8월 아마존 산불이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올해 전 세계적으로 네 번째 대규모 산호 백화 현상이 발생한 것도 이러한 위험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WWF는 지적했다.
커스틴 슈이트 WWF 국제본부 사무총장은 “자연이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생물다양성 손실과 기후변화라는 상호 연관된 위기가 야생동물과 생태계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으며, 글로벌 티핑 포인트는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을 손상시키고 사회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며 “아마존 열대우림이나 산호초와 같은 소중한 생태계를 잃게 되면 자연과 인류 모두 그 파괴적인 결과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지구생명보고서는 보전, 에너지, 식량, 금융 시스템의 전면적 혁신을 통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글로벌 목표 달성의 필수 조건이라고 제시한다. 현재의 식량 시스템은 서식지 파괴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 전 세계 물 사용량의 70%,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으로 전환하고, 식량 손실과 낭비를 줄이는 정책이 필수적이다. 특히 네이처 포지티브(nature-positive) 식량 생산 확대는 생태계를 복원하고 동시에 인류에게 필수적인 영양을 공급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시스템의 경우,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과 화석연료 의존 축소가 필수적이다. 기후 목표를 달성하려면, 향후 5년 동안 재생에너지 설비를 3배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을 2배로 높이는 등 전 세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WWF는 지적했다.
금융 시스템 역시 환경 파괴적 활동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지속가능한 프로젝트와 자연기반 해법에 자본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되어야 한다.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 기후와 생물다양성 목표 달성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를 존중하는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보전 조치가 필수적이다. 현재 전 세계 육지의 16%, 바다의 8%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보다 효과적이고 공정하게 확대하고 관리해야 한다. 재생 농업, 숲과 습지 복원과 같은 자연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은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완화, 그리고 지역 사회의 생계 개선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WWF는 이날 개최한 2024 지구생명보고서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담수 생태계와 식량 시스템, 지속가능 금융의 현황에 대해 발표하며, 한국의 생물다양성 및 보전 과제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례 발표는 이상훈 국립생태원 습지연구팀 팀장과 윤지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 조대현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 한국 매니저가 맡아 진행했다.
지구생명보고서의 공동 연구를 수행한 앤드류 테리 런던동물학회(ZSL) 자연보전·정책국장은 “지구생명지수는 전 세계적으로 야생동물 개체군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생물다양성 감소는 자연을 티핑 포인트로 내몰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필요한 조치를 이미 알고 있으며,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자연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행동과 의지”라고 말했다.
박민혜 WWF 한국본부 사무총장은 “앞으로 5년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2030년까지 수립해 놓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지속가능한 미래에 살 수 있을지 더욱 불투명해진다”며 “전 세계 탄소배출 상위 8위를 차지하는 국가로서 한국 정부도 더욱 책임감을 갖고 글로벌 목표 달성에 기여해야 한다. 인류가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살아갈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행동에 나설 때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이 지구의 모든 생명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