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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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라고 믿었던 초가공식품의 해악 폭로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 크리스 반 툴레켄 지음/ 김성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만3800원

 

“정교한 장비와 기술을 요하는 경우가 많은 일련의 산업 공정에 의해 만들어지며 주로 산업 전용으로 사용되는 성분을 이용해서 제조되는 식품. 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산업 공정은 자연식품을 성분으로 분해해서 그 성분을 화학적으로 변성하고….”

‘초가공식품’의 정의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호한 설명을 쉽게 얘기하면, 일반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팜스테아린, 말토덱스트린, 구아검 등의 성분이 한 가지라도 들어 있다면 초가공식품이다. 주로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것도 특징이다.

 

크리스 반 툴레켄 지음/ 김성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만3800원

영국 감염병 전문의 크리스 반 툴레켄은 2021년 한 달간 식단의 80%를 초가공식품으로 채운 뒤 몸의 변화를 관찰하는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실험 후 그의 체중은 7㎏이 늘었고, 소화불량, 변비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엉망이 된 식욕 호르몬이었다.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은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배고픔 호르몬은 식사 직후에도 치솟았다. 지방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렙틴이 다섯 배, 염증을 나타내는 수치는 두 배가 높아졌다.

초가공식품의 문제는 단순히 포화지방, 나트륨, 당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루로 만들어 압축하고 변성한 이런 음식은 사실상 ‘미리 씹어서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더 빨리, 더 많은 양을 먹게 되고, 이로 인해 턱뼈 발달도 저해한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통기한을 터무니없이 늘릴 목적으로 식품 내 미생물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극히 건조한 것도 초가공식품의 문제다. 2022년 국제학술지 ‘신경학(Neurolog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10% 늘면 치매 위험이 25% 올라갔고, 이탈리아의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은 군은 적게 먹은 군에 비해 사망 위험이 26% 높았다.

반 툴레켄의 신간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는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끼치는 해악도 파고든다. 초가공식품 회사는 ‘하루 비타민D 섭취량 50%’ ‘설탕 30% 저함량’ 등을 표기하며 옆에 귀여운 캐릭터도 그려 넣으면서 아이들이 먹으면 영양에 좋을 것 같은 말로 현혹한다. 이 책이 영국에서 출간된 이후 다섯 명의 과학자가 초가공식품의 유해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중 4명은 초가공식품 제조회사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초가공식품은 음식이 아니다. 산업적으로 생산된 식용 물질일 뿐이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