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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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가의 딸→노벨문학상 수상자로… ‘K문학 세계화’ 새 이정표 [뉴스 투데이]

소설가 한강은 누구

소설가 한승원이 父… 시로 등단
‘붉은 닻’으로 신춘문예 당선
13살 때 5·18 광주 사진첩 보며
인간 근원에 대한 질문 하게 돼
한국현대사 비극 소설로 형상화

2016년 한국 첫 맨부커상 수상
2023년 프랑스 메디치상도 품어
전세계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로서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데 이어서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면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한강은 1970년 전남 광주(현 광주광역시)의 변두리, 기찻길 옆 셋집에서 저명한 소설가 한승원(85)의 딸로 태어났다. 한강의 한자 이름은 한강(韓江)으로, 한승원은 “가장 쉬운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이라는 취지에서 지었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 연합뉴스

한강은 하마터면 세상 빛을 보지 못 할 뻔한 일은 잘 알려져 있는 일화다. 임신 중이던 어머니가 장티푸스에 걸려 끼니마다 약을 한 움큼씩 먹었던 것. 한강은 이를 두고 “나에게 삶이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며 “이 세계는 아슬아슬한 신기루처럼, 혹은 얇은 막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떠오른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강이 13살 때 경험한 1980년 5월의 광주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서울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된 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보여주었다. 한강은 이때의 경험에 깊은 인상을 받고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아버지와 함께…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오른쪽)은 원로작가인 아버지 한승원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사진첩을 보여준 것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된 계기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2005년 11월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한강이 아버지 한승원과 함께 한 모습. 문학사상사 제공
소설가 한강의 부친 한승원 작가. 연합뉴스

작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문학적 감수성에 눈을 떴다. 한승원과 한강은 국내 최고 소설문학상으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을 부녀가 나란히 수상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문인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오빠(한동림)가 소설가이고, 남동생(한강인)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해 소설을 쓰고 만화를 그린다.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의 삶’ 등을 펴낸 한승원은 최근 자전적 내용의 장편소설 ‘사람의 길’을 펴내는 등 여전히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한승원은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딸 한강은 전통사상에 바탕을 깔고 요즘 감각을 발산해 나는 작가”라며 “어떤 때 한강이 쓴 문장을 보며 깜짝 놀라서 질투심이 동하기도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강은 1993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잡지 ‘샘터’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습작을 하기 시작해 그해 계간 문예지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소설집과 장편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 ‘눈물상자’ 등을 펴내는 등 시와 소설 아동문학을 넘나들며 부지런히 썼다.

 

‘바람이 분다, 가라’로 동리문학상(2010년), ‘소년이 온다’로 만해문학상(2014년),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으로 황순원문학상(2015년)을 받으면서 ‘차세대 한국문학의 기수’로 떠올랐다.

 

특히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을 만큼 국제적 명성을 확보했다.

 

가녀린 모습으로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스타일의 한강 작가는 겸손하면서도 올바른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국작가회의 전 이사장인 윤정모 소설가는 “한강은 문학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가졌으면서 동시에 좋은 사람, 올바른 사람”이라며 “가식이 없고 인간관계에서 알력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점쳐 지기도 했지만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강은 선을 그었다. 그는 소설 ‘흰’을 발표하고 가졌던 출판간담회 당시 ‘노벨문학상 작가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런 상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책이 완성되고 다음에 아주 먼 결과”라며 “그냥 글 쓰는 사람은 그냥 글 쓰라고 하면 좋겠다”고 답한 바 있다.

 

한강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구 문예창작과)에서 예비작가들을 상대로 소설 창작론을 가르치기도 했다. 서울예대 학생들은 그에 대해 “섬세함과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사로잡는 교수”로 평가하기도 했다.

 

한강은 어려서부터 익힌 피아노와 노래 실력도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는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펴냈는데, 흘러가 버린 노래 스물두 곡 속에 작가의 아련한 추억을 담아낸 책이다. 그는 이 책에 자신이 작사·작곡하고 직접 부른 노래 10곡을 담은 음반(CD)을 함께 수록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이강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