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에서 그간 영어권 작가들이 많이 수상한 이유는 ‘친숙한 언어’ 덕분이다. 이런 차원에서 영어와 문법·표현 등이 아주 다른 한국 문학은 외국 독자들에게 호응을 받기가 어려웠다.
한강이 세계 최고 문학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번역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탁월한 책 번역을 통해 세계인들을 매료시키는 데 앞장선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36·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한강이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할 때 스미스도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불과 28살의 젊은 번역가가 일군 위업이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푹 빠졌던 스미스는 책 앞부분 20쪽을 번역해 영국 유명 출판사인 포르토벨로에 보냈고, 이를 계기로 ‘더 베지터리안 (The Vegetarian)’이라는 제목의 영문판이 출간됐다. 이는 한강의 작품이 영국 독자들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널리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은 비영어권 작가들의 영어 번역 작품을 대상으로 작가와 번역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2005년 신설됐다. 그만큼 번역의 비중을 높게 보며 노고를 작가와 동등하게 인정한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영문학과를 나온 스미스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2010년 런던 대학 소속 ‘동양 아프리카 연구대학(SOAS)’에서 한국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해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 문학은커녕,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던 그는 한국 문학의 잠재력을 믿었다. 스미스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한국 문학계가 활발할 것으로 짐작했다. 당시 영국에서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없는 걸 알고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밝힌 바 있다. 스무살이 갓 넘은 나이에 한국어를 처음 공부하기 시작한 스미스는 6년 만에 부커상을 거머쥐었다. 스미스는 한강의 2014년 장편 ‘소년이 온다’도 번역해 인연을 이어갔다.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뒤져가며 한국어를 공부한 스미스의 번역은 간결하면서도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특징이다. 한강처럼 시적이고 관념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작품과 만났을 때 시너지를 낸다. 한강도 “스미스는 작품에 헌신하는 아주 문학적인 사람”이라며 “좋은 번역자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고마움을 표현한 바 있다.
스미스는 배수아의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도 영어로 옮겼고, 안도현의 어른용 동화 ‘연어’ 등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