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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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36회) 세비야 :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연 도시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세비야 성당        필자 제공

세비야는 2000년 전 로마 시대 도시인 히스팔리스에서 시작됐다. 로마의 통치에 이어 5세기와 6세기에 반달족, 수에비족, 서고트족의 지배를 거쳐 8세기에는 무어인의 수중에 들어갔다. 13세기에 이르러서야 카스티야 왕국이 되찾아올 수 있었다.

 

세비아 성당 내부 필자 제공

세비야는 이베리아반도의 남쪽에 있는 스페인의 황금시대(Siglo de Oro)를 열었던 도시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한 후, 스페인은 1503년 신대륙과의 무역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인 카사 데 콘트라타시온(Casa de Contratación)의 본부를 세비야에 두게 된다. 이를 통해 세비야는 스페인이 신대륙과의 무역에 대한 왕실 독점권을 부여받은 유일한 항구가 됐다. 그곳에서 가지고 온 금은 보화 덕분에 스페인의 전성시대인 황금시대가 열리게 됐다. 오직 세비야의 내륙 항구에서 출발하고 돌아오는 범선만이 신대륙과의 무역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유럽의 상인들은 신세계로부터 오는 상품을 얻기 위해 세비야에 머무르게 됐다. 이때 도시의 인구는 유럽대륙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었을 정도인 1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번성하게 된다.

 

히랄다 탑           필자 제공
알카사르           필자 제공

이처럼 역사적으로 찬란했던 세비야였기에 도시에는 많은 웅장한 흔적을 남겼다.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들어서자 트리운포 광장의 웅장한 세 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우리를 맞아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세비야 대성당.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세비야 대성당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기도 하다. 대모스크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대성당의 북쪽에 있는 실내 정원인 오렌지 정원(Patio de los Naranjos)이 이슬람 때 만들어진 이래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성당 입구 오른쪽에는 히랄다 탑이 있다. 원래 이 탑은 이슬람 모스크에서 가장 높이 세우는 첨탑인 미나렛(minaret)이었다. 스페인과 미국에서 수많은 탑을 짓는 데 영향을 준 히랄다는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이다. 1248년 세비야를 가톨릭이 재정복한 후에 탑을 허무는 대신 종탑으로 만들었다.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청동 조각상을 97m가 넘는 높이의 탑에 장식했다.

 

알카사르 내부    필자 제공
세비야의 버섯   필자 제공

발걸음을 돌리면 세계에서 오래된 궁전 중 하나이자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레알 알카사르(Real Alcázar)에 이른다. 중세 시대에 세비야를 통치했던 알 안달루스의 우마이야 왕조가 왕궁으로 세웠다. 1995년에는 카를로스 전 국왕의 아들 결혼 연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지금까지도 스페인 왕실에서 왕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비야에는 오래된 건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비야 시는 최근에 ‘세비야의 버섯’(세타스 데 세비야)을 지었다. 버섯 모양의 목조 구조물은 25m 높이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세비야를 제대로 즐기는 유용한 팁 하나를 소개한다. 도시 곳곳에 있는 마차인 칼레사를 타고 석양 무렵의 도시를 둘러보는 것. 트리운포 광장을 거쳐, 세비야 대성당과 마리아 루이사 공원까지 간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