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오늘 경남 김해의 한 수영장에서 놀던 9세 A 양이 몸이 축 처진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근처에 있던 남성이 아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물 밖으로 건져냈으나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되자마자 숨졌다.
단순 익사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았던 점들
당시 수영장에 있던 안전요원은 누군가가 허우적대거나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또 익사라고 하기에는 심폐소생술을 했을 당시 아이가 물을 뱉어내지도 않았으며 잠시 의식이 돌아오기도 했다.
수영장 측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으나 정작 아이의 엄마 안 모 씨(당시 33세)가 수영장 부주의를 주장하며 부검을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시체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진한 붉은색의 얼룩이 아닌 선홍색의 얼룩이 나타났고, 이를 수상히 여긴 담당 검사가 부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검사 결과 사인은 놀랍게도 청산가리 중독이었다. 아이의 혈액에서는 성인 치사량 3배에 달하는 수치의 청산가리가 검출됐다.
"나 맛있는 거 먹고 왔다"…사망 전 자매에게 자랑
아이에게 독을 준 건 누구였을까. 목격자가 있었다. 당시 A 양과 함께 수영장에 놀러 온 A 양의 언니와 사촌 자매였다. 당시 엄마 안 씨가 둘째 딸인 A 양에게만 요구르트를 줬고, A 양은 이를 언니들에게 자랑했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또 있었다. A 양 사망 전날인 2003년 10월 11일 안 씨는 보험사 직원을 만났다. 이날 안 씨는 A 양의 상해보험을 급하게 가입했다. 교통상해 2억 원, 상해 후유 장애 30만 원, 상해 사망 200만 원이 보장되는 상품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사망했던 수영장은 시설 이용 중 고객이 안전사고로 사망하면 1억 원을 배상해 주는 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실제로 안 씨는 이듬해 1월에 수영장을 상대로 보험금 지급 청구를 시도하기도 했다.
딸 잃은 엄마인데…분노, 비통함 전혀 없었다
경찰은 범인이 안 씨라고 확신했으나 안 씨는 범행을 부인했고 결정적 증거도 없었다.
이에 경찰은 안 씨가 거짓말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뇌파검사를 진행했는데, 안 씨에게 그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요구르트를 보여주자 낯익은 물체를 보면 순간적으로 격렬해지는 'P300 뇌파'가 반응했다.
또 행동분석관은 안 씨의 미세 표정을 분석했는데 안 씨는 '아이가 왜 죽었는지 짐작 가는 것이 있냐'는 물음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기도 했다. 소중한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안 씨는 범인이 청산가리를 어떻게 넣었을지를 묻는 말에는 "그 부분에 대해 일부러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내 아이가 어떻게 사망하게 됐는지 알아내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안 씨의 진술서에서도 범인에 대한 분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묘사한 안 씨의 진술서는 사뭇 간결하고 덤덤했다.
특히 '아이가 사고를 당해 위독하다고 도와달라는 전화를 했다'고 쓴 부분에서 안 씨는 '위독'의 '독'자를 지우고 '위급'으로 단어로 수정했는데, 프로파일러는 독을 사용해 살인을 저지른 안 씨가 '독'자에 거부감을 느낀 것으로 봤다.
"너 또 약 먹였지?"
사실 안 씨의 살인은 처음이 아니었다. 경찰이 2년 가까이 수사를 진행하면서 숨겨진 사실이 드러났는데, 안 씨에게는 둘째 딸이 사망하기 5년 전부터 만나왔던 내연남 B 씨가 있었다. 평소 둘째 딸 A 양은 갑자기 집에 들어와 아빠 행세를 하는 B 씨를 유독 싫어했다고.
안 씨를 수사하던 경찰은 안 씨의 통화를 감청하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안 씨와 통화하던 B 씨가 "너 또 약 먹였지?"라는 말을 했던 것.
이 단서를 토대로 경찰은 안 씨 주변에서 유사한 사건이 있었는지 추가 범행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고, 안 씨가 B 씨와 내연 관계를 이어오던 2001년 12월 안 씨의 남편이 사망한 사실을 알아냈다.
안 씨의 남편이 사망한 날 안 씨 부부는 김장을 도우러 이웃집에 갔다 왔고, 귀가 후 안 씨가 건넨 커피를 마신 남편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사망했다.
당시 남편의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었고, 안 씨는 남편이 김치와 생굴을 먹었다며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의사는 생굴에 의한 과민성 쇼크로 진단했고, 그렇게 남편은 부검 없이 그대로 화장됐다. 이후 안 씨는 남편이 사망하자마자 남편 앞으로 든 6개의 보험에서 3700만 원 상당의 돈을 수령했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은 계속됐다. 남편 사망 8개월 후인 2002년 8월 안 씨의 옆집 친구 C 씨가 갑자기 사망했는데, 당시 C 씨는 안 씨 집에 들러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C 씨의 사인은 부검 결과 급성심근경색으로 나왔으나, 부검에 참여했던 한 수련의는 '약물중독이 의심된다'는 미심쩍은 메모를 남겼다.
더 의아한 건 C 씨가 사망 직전 생명보험에 들었는데, 보험수익자가 다름 아닌 안 씨라는 점이었다. 보험수익자가 C 씨의 남편이 아닌 안 씨인 것을 수상하게 여긴 보험조사관은 C 씨의 남편에게 이를 알렸고, 남편은 수사기관에 진정서를 냈다. 하지만 안 씨가 C 씨를 살해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어 사건은 기각됐다.
앞선 두 번의 살인으로 들키지 않고 보험금을 타 내면서 대담해진 안 씨는 결국 딸까지 살해하면서 꼬리를 밟혔다. 최종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안 씨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뉴스1>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