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그리고 이스라엘과 일촉즉발의 대립 양상인 이란이 서로 결속하는 모양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한다는 ‘반미’(反美)가 공동의 기치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만났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옛 소련을 구성한 공화국들 중 하나였으며 소련이 해체된 1991년 독립국이 되었다. 이란과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푸틴은 “우리 두 나라는 국제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며 “현재 세계의 현안에 대한 양국의 평가는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세계 현안’이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를 뜻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는데, 러시아와 이란이 보기에는 미국이야말로 ‘공동의 적’이 아닐 수 없다.
페제시키안은 “세계에서 이란과 러시아의 입장은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화답했다. 그는 가자 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을 맹비난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기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도 포함돼 있다.
이란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 드론(무인기), 미사일 등 무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역시 러시아에 엄청난 규모의 포탄을 지원 중인 북한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질타를 받고 있다. 대외 문제에 있어 ‘온건파’로 분류되는 페제시키안이 올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이란이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과의 대화 및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아랍권 간의 갈등이 격화하고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다시 반미 정서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푸틴은 오는 22∼24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에 페제시키안이 참석할 것을 초청했다. 이란이 올해부터 브릭스의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한 가운데 페제시키안은 흔쾌히 참가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릭스는 2000년대 중반 신흥 경제국으로 부상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으로 출발했다. ‘브릭스’(BRICS)라는 명칭 자체가 이 5개국의 영어 이름 첫 글자를 따 만든 것이다. 이후 회원국 확대를 모색하다가 2023년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4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애초 아르헨티나와 알제리도 브릭스 가입에 관심을 표명했으나 결국 마음을 돌려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