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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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정상회담 연내 개최 공감대… 러, ‘배타적 군사동맹’ 맹비난

尹, 5박 6일 동남아 순방 종료
‘한·미·일’ 협력 의지 재확인
일본·호주 등 5개국 정상회담
러 “韓, 아세안 나토화” 비난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계기로 미국 블링컨 국무장관과 만나 연내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했다. 필리핀·싱가포르·라오스 3국 순방을 통해 인구 6억8500만, 국내총생산(GDP) 3조8100억달러(약 5140조원) 규모의 거대 단일 시장인 아세안과 경제 협력 기반을 강화하고 안보 협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러시아는 한국의 아세안 안보협력 강화 기조에 반발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23년 8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연내 개최 공감대

 

12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라오스 총리 주최 갈라 만찬 당시 블링컨 장관과 환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블링컨 장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각별한 안부를 전하며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이어 ‘연내에 한·미·일 정상회의를 개최하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잘 알았다. 앞으로 긴밀히 소통해 나가겠다. 연내에 만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대답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 취임(10월1일), 미 대통령 선거(11월5일) 변수와 관계없이 한·미·일 협력체계를 공고히 이어가자는 취지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는 2025년 1월20일까지다.

 

연내 주요 국제회의는 11월10∼16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와 18∼19일 브라질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있다. 이를 계기로 3국 정상이 만나 캠프데이비드 정신을 이어갈 새로운 논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캠프데이비드 원칙은 ‘공동의 가치와 규범에 기반을 둬 한반도, 아세안, 태평양 도서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 평화 및 번영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며 지난해 8월 3국 정상이 만나 공동 채택한 문건이다.

 

◆아세안과 안보관계 확장... 5개국 정상회담도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으로 전임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 폐기 이후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동남아 정책을 제시했다고 자평한다. 특히 2022년 11월 아세안 특화 지역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 Korea-ASEAN Solidarity Initiative)을 발표한 이후 지난해 4월 ‘자유·평화·번영’에 중점을 둔 8대 중점 추진과제와 구체적 이행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순방에서 아세안과 35년 만에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며 실질적 성과를 도출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기존 경제·통상 중심의 협력을 넘어 전통·비전통 안보, 아세안의 미래 발전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 파트너십 구축”을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갈라 만찬에 참석해 손싸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의 만찬사에 박수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의 이번 순방 최대 성과는 아세안과의 관계 격상이다. 윤 대통령은 아세안과 외교 관계 수립 35년만에 아세안과 최고 단계 파트너십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CSP)를 수립했다. 그간 교역은 82억달러에서 1872억달러로 23배 성장했고, 투자는 1억달러가 채 안 되던 수준에서 74억달러로 80배, 인적교류도 연 28만 명에서 1018만명으로 37배 증가했다. 아세안은 현재 우리나라의 2대 교역 대상이자 투자 대상 지역으로 그 위상이 커졌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아세안과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미래지향적 협력 비전을 제시했다. 내달 한·아세안 국방장관회의가 처음 대면으로 열리고, 사이버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과 전략적 안보 협력이 강화된다. 특히 필리핀과도 해상연합훈련 등을 확대하기로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다.

 

또 경제 측면에서도 내년 한·아세안 싱크탱크 다이얼로그(대화체)를 출범하고 스마트시티 협력 등 미래사회 구축 측면에서도 서로 협력하기도 했다. 또 한국의 ‘소프트파워’ 신장으로 아세안에서 높아진 위상에 맞춰 향후 5년간 아세안 학생 4만명에 대한 연수사업, 이공계 첨단분야 장학생 사업 발족 등 미래 세대를 위한 교류도 확대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 계기로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라오스와 내년 재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포괄적 동반자 관계 수립을 합의하고, 기후, 개발협력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또 일본 이시바 신임 총리와는 취임 9일만에 첫 한·일 회담을 개최해 그간의 셔틀외교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또 앤서니 알바니지 호주 총리와 회담에선 국방, 방산, 경제 안보 등 핵심분야 협력을 논의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나 구체적인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호주는 현재 해군의 차기 호위함 도입 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방산 수출 낭보가 기대되는 국가다. 

 

이 밖에도 지난달 6일 취임한 패통탄 친나왓 신임 태국 총리와 첫 회담을 열고 교역, 투자, 청정에너지를 비롯한 포괄적 협력 발전 방향도 논의했다. 또 베트남 팜민찐 총리와 만나 2030년까지 양국 교역액 15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교역을 더 활성화 시키자고 논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尹, 중·러 면전서 쓴소리... 러 “정치화 시도” 비판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라오스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해서는 규범 기반 국제질서 수호 국가로서 인태지역 및 전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부의 기여 의지를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이 참여한 이번 회의에서 러·북 군사협력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정면 도전임을 강조했고, 중국이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와 관련해 자유롭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해 국제법 원칙에 따른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 유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러시아는 이와 관련해 비판을 쏟아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전날 오후 열린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일 협력 등을 맹비난했다. 그는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좁고 배타적인 미국 주도의 군사·정치적 연합을 만들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심 영역으로 끌어들이기로 결정했음이 분명하다”며 “여기에는 미국, 일본, 한국으로 구성된 트로이카가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호주, 뉴질랜드, 한국, 일본을 포함하는 쿼드를 만들었다”며 “이 모든 것은 집단적 노력을 촉진하지 않고, 공동 공간을 ‘친구와 적’으로 나누어 분열시킨다”고 비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기자회견에서도 EAS 최종 성명 채택에 반대한 국가를 묻는 말에 “간단히 말해 미국·일본·한국·호주·뉴질랜드가 수십 년 간 이어온 EAS 관행에 반해 최종 선언을 정치적 성명으로 만들려는 집요한 시도 때문에 최종 선언이 채택되지 않았다”며 “기존 관행은 대립적인 지정학적 내러티브를 포함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 몇 년 간 선언은 경제, 무역, 투자, 인도주의 분야 실질 협력에 초점 맞췄다”며 “이를 정치화하려는 시도가 비생산적”이라고 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남중국해 발언과 관련해서도 “일본·뉴질랜드·호주를 포함한 친서방 그룹의 참가자들이 미국의 수사를 반복했지만 이는 논의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아세안 회원국들 사이에서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평가절하했다. 또 “미국은 폐쇄적 블록 성격의 군사·정치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 정책은 중국과 러시아를 모두 견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