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지역 ‘선거브로커’와의 연결 고리 찾았다
앞서 나갔던 ‘명태균씨의 지난 10년 자취 추적 기사’가 그렇게 큰 관심을 끌 줄 사실 몰랐습니다.
그간 지역 정치권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그래서 아는 사람만 아는 베일에 싸인 인물에 대해 서류상으로 추적할 수 있는 10년치를 찾아본 것이었는데, 주변 반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응원과 격려가 기자로서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그 기사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뜻밖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제보 내용은 한 장의 명함 사진이었는데요. 그런데 명함 속 인물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기자로서 호기심을 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 호기심이 이번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번에 제보 받은 명함은 다름 아닌 ‘시사경남’ 대표 A씨였는데요.
시사경남은 명씨가 사실상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신문‧인터넷방송‧여론조사업체입니다.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독자를 위해서 다시 설명을 드리자면, 주식회사 좋은날리서치에서 2016년 4월 주식회사 썬리서치→주식회사 시사경남으로 회사명이 바뀝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9월22일에 썼던 제 기사를 다시 읽어보시면 됩니다.
지역 정치권 인사들은 2018년쯤 명씨가 자신을 시사경남 CEO라고 주변에 소개하고 다녔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제 시사경남 명함에는 명씨가 CEO라고 나와 있습니다. 게다가 시사경남이라는 상호가 2017년 9월부터 변경 등기가 돼 있는 것을 보면 얼추 시기도 비슷합니다.
시사경남에는 명씨 말고도 보도국장 B씨와 편집국장 C씨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김영선 전 국회의원과 관계가 있는 인물들입니다.
B씨는 김 전 의원과 친척 관계이면서 김 전 의원이 대표로 있었던 법무법인 한사랑 법무실장, 김 전 의원의 보좌관도 했었던 사람입니다. 요새 자주 언론에 거론되는 논란의 여론조사업체 ‘미래한국연구소’의 명의상 대표이면서 소장이기도 합니다.
C씨는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창원시 의창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후 지역 사무실 회계 실무를 맡았던, 김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검찰에 고발된 인물입니다.
맞습니다. C씨는 최근 언론에 스스로를 공개한 김 전 의원의 회계담당자 강혜경씨입니다.
이런 인물도를 잘 파악하되, 오늘은 A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사실 큰 회사도 아닌 조그만 지역 인터넷신문사에 CEO와 대표 직책이 따로 있는 것도 그렇고, 시사경남 법인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명의상 대표는 D씨로 돼 있어서 명함상 대표인 A씨와의 관계가 궁금하긴 합니다.
A씨는 국민의힘 윤한홍 국회의원과 인연이 있는 인물로 지역에서는 알려져 있습니다.
윤 의원과는 마산중‧마산고 동기이면서 2016년 4월 윤 의원이 처음 창원시 마산회원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지역구 사무국장으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A씨가 시사경남 대표로 있었던 시기는 아마도 윤 의원의 지역구 사무국장에서 그만둔 이후인 것으로 짐작됩니다.
지역 정치권 한 인사는 “A씨가 지역 정치판에서 오래 전부터 활동해왔던 인물이기에 명태균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시사경남 사무실에는 명씨, A씨, 김영선 전 의원 방이 따로 있었고, 당시 사무실에 지금 국회의원이 된 인물들이 찾아오기도 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A씨가 시사경남 대표로 있으면서 지역 정치인들과 만나 명씨와 함께 정치적 인맥을 쌓아 나갔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시사경남 대표 이후의 A씨 행적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2022년 민선 8기 홍남표 창원시장의 후보 시절 A씨는 선거캠프에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습니다.
홍 시장은 같은 정당 예비후보로 출마하려던 자에게 불출마를 조건으로 공직을 제안하며 매수한 혐의로 시장에 당선된 후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때 A씨도 같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A씨가 홍 시장과 예비후보 출마자를 이어주는 등 소위 ‘선거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검찰이 A씨 집을 압수수색했을 때 금고 안에 보관 중이던 4억3000여 만원의 현금 다발과 수표가 발견돼 돈의 출처를 두고 지역 정치권에서 꽤나 회자 되기도 했습니다.
A씨는 과거 골프장을 운영하면서 마련한 비자금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은행 ‘띠지’가 그대로인 점, 사용 흔적이 보이지 않고 지폐 보관 상태가 매우 양호한 점 등으로 미뤄 A씨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죠.
검찰은 이 돈이 홍 시장을 위해 누군가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이거나 출마 포기의 대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103만 창원시민들은 이 거액의 출처에 대해 여전히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다 이제는 이 사안이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게 기자로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1심에서 홍 시장은 무죄를 받았지만, A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2심 선고가 나올 예정입니다. 결과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A씨와 관련한 이번 취재는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의 중심에 선 명씨에 대해 스스로를 “그림자”라고, 또 어떤 언론에서는 ‘정치 컨설턴트’라고 소개하기에 그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약간의 이해를 돕고자 이번 기사를 정리해봤습니다.
명씨를 두고 한 지역 정치권 인사는 “여태 언론에 나온 행적만 보더라도 그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대한민국 정치나 언론이 지금 그의 입만 좇고 있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고 한숨을 쉬며 한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명씨와 A씨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어봤습니다.
A씨는 “2016년쯤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기 위해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의외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A씨가 말하길 시사경남 대표 명함을 명씨가 먼저 파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A씨는 “명의를 도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제가 쉬고 있을 무렵 2018년 가을쯤 명씨가 여기에(시사경남) 가끔씩 시간 날 때 들러달라고 해서 가봤더니 제 이름으로 된 시사경남 대표 명함을 이미 파놓았었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럼 명씨가 자신을 시사경남 대표로 두려고 했냐고 묻자 A씨는 “명씨가 시사경남에서 저하고 같이 있기를(같이 활동하기를) 원했다”며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사경남 사무실에 가서 찾아오는 정치인들하고 인사도 하고 차도 마시기는 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시사경남 대표로 있으면서 근로소득을 받지 않았고, 저 역시 시사경남 대표 타이틀로 (정치적)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면서 시사경남 대표 역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습니다.
명씨에게도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