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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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재선충병, 지역 맞춤 방제전략 짜야”

감염땐 100% 고사… 파괴자로 불려
4∼5월 집중… 2024년 90만 그루 피해
전문가들 민관합동 방제 강화 강조
“광역 단위로 유기적 대처 효율적
예산도 광역선 단지로 편성해야”

“단풍인 줄 알았더니 저게 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래요?”

13일 대청호 근처 대전 동구 주산동을 지나던 70대 행인은 “잎이 벌겋게 물든 게 가을이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병든 거였냐”며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니 옆에 있는 나무들도 다 베지 않으면 금세 확산하겠다”고 혀를 찼다. 주산동은 올해 7월 소나무재선충병이 새로 발생했다. 산림당국은 조만간 일부 남은 감염목과 감염우려목 방제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경북 포항 한 야산이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말라 죽은 소나무로 울긋불긋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소나무재선충병은 소나무류에서 발생해 급속히 나무를 고사시키는 시들음병이다. 한번 감염되면 100% 고사해 ‘소나무 파괴자’로 불린다. 길이 1㎜의 작은 벌레 재선충이 나무 속에서 번식하면서 수분과 양분을 모두 빨아들이는데 스스로 이동할 수 없어 솔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의 몸속으로 들어가 확산한다.

재선충병은 확산세이다. 산림청이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2020∼2024년) 소나무재선충병 발생 현황을 보면 2020년 40만6362그루, 2021년 30만7919그루, 2022년 37만8079그루, 2023년 106만5967그루, 올해 89만9017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병 피해를 입었다.

겨울철 가뭄과 봄철 고온 현상 등 기후변화는 재선충병을 활성화한다. 재선충은 그동안 4월 말∼5월 초에 발생했는데 지난해 첫 발생시기는 4월 중순으로 2020년보다 열흘 정도 이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최근 10년간 재선충병 매개충의 우화(羽化: 번데기가 날개가 있는 성충이 됨) 시기와 봄철 기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기온 증가에 따라 우화 초일이 열흘 정도 앞당겨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재선충병 방제 최일선에 서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시기 방제작업에 소홀해진 탓이라는 시각도 있다. 각 지자체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재선충병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지난 11일 제주에서 열린 관련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재선충병 방제 모범사례로 한목소리로 제주도를 꼽았다. 제주는 최근 10년 동안 재선충병 감염목 발생률을 96%까지 감소시켰다.

2004년 9월 제주시 오라골프장 인근에서 최초 발생한 재선충병은 10년 만에 제주 전역을 갉아먹었다. 제주는 원래 강풍이 많이 불고 고온다습한 지역 기후조건상 재선충 활동·확산에 유리한 지역인데 2012년과 2013년에 잇따라 발생한 태풍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제주도는 행정인력과 군인·소방은 물론 민간까지 섬 안의 모든 인원이 동원돼 감염목을 잘라내고 예방주사를 놓았다. 2014년 재선충병 감염목은 52만1000그루에 달했으나 올해 4월 기준 2만2000그루로 96% 줄었다. 지난해부터 제주 재선충병 감염목은 3만그루 아래로 떨어졌다. 오름이나 곶자왈 등 환경훼손 우려가 있는 곳은 인력을 투입한 핀셋 방제로 환경훼손을 최소화했다. 제주에 뿌리내린 붉은 바이러스는 현재 대부분 제 색을 찾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관 합동 방제를 강화하는 한편 지역별 맞춤형 방제전략으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광역단위의 방제전략 수립, 방제시기 전환, 예산확대 등이 시급하다고 제언한다. 송동근 한국산림기술사협회장은 “방제사업을 국가기본전략에 수립해 광역단위계획을 먼저 세우고 지자체 기본계획 수립으로 유기적인 대처에 나서야 보다 효율적인 방제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회장은 이어 “재선충병 확산은 인간, 교통, 도로 방향으로 확산한다는 점에 착안해 예산수립 역시 지자체 단위가 아닌 광역선(線)단지로 편성하고 광역기본계획 수립 지역에 예산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영우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기후변화 등으로 소나무재선충병 발생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주로 매년 1∼4월 상반기에 방제가 집중되고 있다”며 “상반기에 예산이 소진돼 하반기 추경 등 경정예산 등 제한적인 예산으로 사업을 시행하다 보니 정작 본방제 때 예산이 없어 방제 시기가 늦춰진다”고 말했다. 남 연구사는 “방제예산이 줄면 피해목 발생 증가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가을방제가 본방제가 되도록 예산집행을 조정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