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공무원 A씨는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에 참석했다가 노조 활동에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공무원 처우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보다는 현 정부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정치적 구호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부에 할당된 인원을 채워야 한다는 지부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냈다”며 “윤석열 퇴진과 밥벌이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정치적 편향과 과격한 시위방식 어느 것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13일 노동계에 따르면 20·30대 젊은 공무원을 중심으로 정치투쟁보다는 복지가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급노조를 탈퇴하자는 주장에도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젊은 공직자들은 사내 게시판 등 온라인을 통해 익명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산하 지부 집행부는 거세지는 요구에 하나 둘 상급노조 탈퇴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새다.
◆저임금 등 현안 산적… “정치투쟁은 사치”
자신을 20대 공무원이라고 밝힌 B씨는 전공노 한 산하 지부 게시판에 “민주노총과 전공노는 툭하면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격한 시위를 벌여 공무원들을 힘들게 한다”며 “이런 상급노총·노조 아래서 공무원들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이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그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버티지 못하고 공직을 떠나는 동료들이 늘고 있다”며 “악성 민원, 경직된 조직문화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정치투쟁은 사치”라고 덧붙였다.
경북 안동시청공무원노동조합(안공노)이 지난해 8월 전공노를 탈퇴한 것도 지나친 정치투쟁이 이유였다. 전공노는 2022년 11월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윤석열정부 정책평가 총투표’를 실시했다. 정부는 일부 문항이 공무원노조법에서 보장한 노조활동으로 보기 어렵다며 위법행위로 판단했고, 당시 안공노는 조합원들의 의견에 따라 산하 지부 중 유일하게 총투표에 불참했다.
인력 강제동원에 대한 불만도 탈퇴 주장에 힘을 더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공노 산하 지부 관계자는 “투쟁집회나 행사가 열리면 지부에 인원 할당이 내려온다”며 “우리의 경우 5~7명을 모집해야 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나가야 하고 보상비도 많지 않아 가려는 조합원들이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조합비 대부분을 상급노조가 분담금 명복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불만을 키우는 요소다. 강원 원주시공무원노조(원공노)에 따르면 전공노 탈퇴 이전 매달 1인당 조합비 1만5000원을 걷었는데 이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1만2000원을 상급노조가 가져갔다. 안공노는 전공노 지부일 때 조합비 1만5000원 중 1만1000원을 분담금으로 냈다. 우해승 원공노 위원장은 “매년 평균적으로 8000만원 안팎을 상급노조에 상납했다”며 “전공노가 이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전공노를 탈퇴한 개별노조들은 조합비를 모두 조합원 복지에 사용하면서 지지를 얻고 있다. 원공노는 3년째 매년 노조 창립기념일과 노동절에 홍삼과 치악산한돈 등 지역특산물을 구입해 조합원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최근에는 리조트 회원권 등을 구입해 조합원들과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개별노조로 전향한 안공노와 경북 김천시청공무원노조도 조합비를 모두 조합원들에게 환원할 계획이다.
◆조합비 80% 징수 상급노조, 탈퇴 지부엔 소송
상급노조 탈퇴에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공노는 이탈한 산하 지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전공노는 2021년 8월 원공노를 상대로 ‘총회결의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원공노가 탈퇴하는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이다. 1·2심 법원은 원공노 손을 들어줬다. 전공노는 업무상 횡령과 업무방해 혐의로 원공노 집행부를 고발했지만 두 사건 모두 수사기관에서 ‘혐의 없음’으로 종결 처리됐다.
전공노는 안공노를 상대로 총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항소심까지 가는 다툼 끝에 안공노가 승소했다. 유철환 안공노 위원장은 “전공노가 산하지부들의 탈퇴 움직임을 압박하기 위해 무모한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부들의 탈퇴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공노를 탈퇴해 별도의 ‘반민노 연대’를 결성한 공무원노조들은 탈퇴한 지부를 괴롭히는 기득권 노조의 행태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성호 반민노 연대 사무국장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승소 가능성이 없는 소송을 남발하는 등 상급노조를 탈퇴한 개별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보복이 일상화한 상황”이라며 “거대 기득권 노조 괴롭힘 방지법으로 노동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공노 등은 단일대오를 강조하고 있다. 전공노 관계자는 “노동조합은 연대해야 힘이 생긴다. 흩어져 개별로 싸우겠다는 것은 노조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진정한 노조 활동을 하려는 이들은 개별노조를 떠나 전공노로 돌아오는 추세”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