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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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무인

기원석
누가 날 이런 곳에서 깨웠습니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더니 텅 빈 카페입니다 분명 귀가 저릿할 정도로 웅장하고 주저앉은 육성이었습니다 다소 격앙된 대화가 들려왔으나 관심도 흥미도 내용도 없었기에 잠들었는데 텅 빈 카페입니다 분명 눈이 멀 것만 같은 휘황하고 참담한 슬픔이었습니다 시야에 그을음이 졌습니다 비극도 아니고 불운도 아니고 울음소리도 아니어서 당황스럽기만 한 슬픔이었는데 텅 빈 카페입니다 분명 검게 탄 베이글과 엎어진 커피잔이었습니다 혓바닥을 내미는 계절도 아니고 맨손과 맨 귀로 갇힌 만원 지하철도 아니고 얼룩무늬 철모와 방탄조끼와 너도밤나무 그늘로 피신하던 추억도 아닌데 텅 빈 카페입니다 (중략) 어둠 속에 홀로 불이 켜진 카페였습니다 누가 저런 곳에서 잠들었습니까

동네에 무인 카페가 여러 곳 생겼다. 언제 보면 가득 차 있고 또 언제 보면 텅 비어 있는 곳. 어느 밤 24시간 운영되는 작은 무인 카페 앞을 지나다 보았다. 단 한 사람만이 그곳 구석 자리에 앉아 읽고 쓰는 모습. 노트북을 앞에 두고 깊이 몰두한 모습. 무엇이 그를 “어둠 속에 홀로 불이 켜진” 곳에 앉아 있게 했을까. 시의 한 장면처럼 그 또한 밤이 더 깊어지면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슬며시 잠이 들지도 모른다. 밤은 길고 도시의 삶은 대체로 고단하므로. 꿈에서는 지난 세월의 복잡다단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를지도. 그리고 불현듯 “휘황하고 참담한 슬픔”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이런 슬픔은 결국 혼자이기 때문일까, 결코 혼자일 수 없기 때문일까. 혼자 잠이 들더라도 아주 오래 잠들지는 않도록 남몰래 그를 지켜보는 눈이 어딘가 있을 것이다.

 

무인 카페, 무인 헬스장, 무인 문구점, 무인 아이스크림…. 우리 곁의 수많은 무인들. 무인 아닌 무인들.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