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재원미경
2015년 회기동 골목 안쪽에서 ‘트라토리아 오늘’이라는 작은 음식점을 오픈했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종류인 트라토리아(Trattoria)와 오스테리아(Osteria)가 잘 알려지지 않던 시절이라 다른 동네에 트라토리아가 있다면 거리가 멀더라도 꼭 찾아가고는 했었다. 이제는 영업을 하지 않지만 상수역 인근에 있던 ‘트라토리아 차오’는 그런 내게 보물 같은 곳이었는데 트라토리아에 맞는 샐러드와 메뉴 구성, 면의 익힘까지 완벽했었다. 나와는 가는 길이 분명 다르지만 아득해 보이는 어느 목적지가 같은 듯한 느낌의 그 음식점 덕분에 상수동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상수동은 가을을 걷고자 하는 식객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상수역에 내려 예전 추억 속에 묻어두었던 음식점 자리를 지나 조금 걷다 보면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있을 것 같은 음식점이 하나 나온다. 최근 새로 문을 연 와인 다이닝 ‘재원미경’이다. 가운데 큰 테이블을 중심으로 우드톤의 따뜻한 느낌이 나는 테이블과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요즘같이 날이 좋을 때면 문을 활짝 열어서인지 맛있는 음식내음이 솔솔 흘러나오는데 조명을 받은 와인 잔의 영롱함이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레스토랑의 이름이 독특하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부모님의 성함을 따서 재원미경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갑자기 “재원미경이 뭐예요”라며 질문한 내 입방정이 송구했지만 또 훈훈한 마음이 올라옴을 속일 수 없었다. 이곳의 옥건 오너 셰프는 소믈리에 자격증을 보유하며 세계요리사협회(WACS) 요리대회에서 수상까지 하는 부지런함을 겸비했는데 욕심을 내지 않고 겸손하게 구성한 메뉴들이 참 좋아 보였다.
◆가을 느낌 물씬나는 버섯 파스타
상수동 재원미경은 와인 다이닝이다. 테이블 6개의 아담한 규모에 비해 와인의 종류는 50가지가 넘는다. 곡물과 견과류가 들어간 식전빵과 올리브 버터는 시작부터 앞으로 나올 메뉴들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따뜻하게 나온 빵에 올리브 버터를 바르니 버터가 사르르 빵속에 스며든다. 갓 나온 빵과 버터, 올리브가 입안에서 즐겁게 탱고를 추는 것 같다. 빵과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면서 창문 너머 상수동의 거리를 보며 옛날을 추억해 보았다. 달그락거리는 오픈 주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듯한 즐거운 소음. 사람들의 잔잔한 수다 소리. 활짝 열어 놓은 문 넘어 들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 이렇게 행복하게 음식을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몇이나 있을까.
오래지 않아 첫 메뉴 꿀대구가 나왔다. 수비드한 대구와 토마토소스 꿀을 넣은 요리로, 익힌 생선에서는 표현하기 까다로운 단맛을 접시 위로 끄집어낸 요리다. 생선은 굉장히 부드럽다. 소스의 단맛이 부드러운 대구와 함께 입안에서 사라짐과 동시의 토마토의 상큼함이 찾아온다. 곧이어 양고기 소시지가 나왔다. 직접 만든 양고기 소시지는 풍부한 육즙과 함께 다양한 향신료 향이 가득했는데 함께 나온 매시트포테이토는 다른 스테이크 요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맛이 훌륭했다. 또 양고기 특유의 향을 향신료로 이끌어 내 호불호가 적을 것 같은 맛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버섯 파스타는 완벽한 간과 함께 버섯만으로 맛을 냈다. 이 파스타 한 접시로도 와인 한 병을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좋았는데 겉을 노릇하게 구워낸 버섯은 ‘난 그저 파스타에 들어있는 가니시 따위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듯 식감이 좋았다. 파스타는 여럿이 안주로 먹기 편하게 리가토니로 만들었다. 직접 갈아 만든 버섯 소스에서는 가을 풍미가 물밀 듯이 올라오는데 가히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단골이라고 자처하며 오는 재방문 손님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재원미경의 버섯 파스타는 한동안 내 베스트 메뉴에 선정될 것 같은 느낌이 진하게 다가왔다. 재원미경은 양식이지만 틀에 박힌 요리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서비스로 나온 테린은 이름이 재미있었는데 ‘프렌치 그것 ? 테린’이다. 아직 테린에 대해 많이 접해보지 않은 손님들을 위해 재미있게 메뉴명을 정했다고 한다. 새로 오픈한 가게를 찾는 일은 정말 설레는 일이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올 때에는 나도 단골이라고 칭하고 싶다. 재원미경은 가까운 곳에 있다면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와인 한잔을 하고 싶은 정감 가는 레스토랑이다.
◆버섯
버섯은 우리에게 정말 사랑받는 식재료다. 시장이나 마트 어느 곳에서도 버섯을 쉽게 구할 수가 있다. 또 버섯 요리는 다양하다. 버섯에 따라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지만 버섯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으로 버터나 향이 좋은 오일에 천천히 구워 약간의 소금간만 해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버섯의 채즙이 오롯이 버섯 안에 남아 있기 때문에 특히 지금 같은 계절엔 버섯의 풍미가 한층 더 올라온다. 특유의 풍미가 요리에 큰 영향을 끼치며 건조한 버섯들에서 나오는 감칠맛은 국물에 넣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자연 조미료이다.
■크루통을 올린 버섯 크림
<재료>
양송이버섯 100g, 식빵 1개, 양파 30g, 마늘 1톨, 휘핑크림 50㎖, 우유 100㎖, 계란 노른자 1알, 그라나파다노치즈 5g, 버터 20g
<만드는 법>
① 양송이버섯, 양파, 마늘은 다진 뒤 버터에 천천히 볶아준다. ② 우유를 넣고 끓이다 간을 하고 불을 끈 뒤 노른자와 섞은 크림을 저어가며 넣어준다. ③ 그라나파다노치즈를 넣어 농도를 맞춰준다. ④ 식빵을 자르고 오븐에 바삭하게 구운 뒤 소스에 얹어준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 셰프 Paychey@naver.com